[영남타워] 미녀 ‘벨’과 엠마 왓슨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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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30   |  발행일 2017-03-30 제31면   |  수정 2017-03-30
20170330

지금은 대학생이 된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 즐겨보여주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 ‘미녀와 야수’가 있었다. 미녀와 야수의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디즈니 특유의 탄탄한 내용과 ‘Beauty and the Beast’를 비롯한 아름다운 노래들이 많아 아이들보다 내가 더 재미있게 봤다. 아마 수십 번은 봤으리라 생각된다.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뒤에는 이 비디오를 더 이상 보여주지 않았다. 아마 딸이었으면 좀 더 오래 보여주었을 텐데 아들이라 조금 크고 나니 이 애니메이션에 약간 흥미를 잃은 듯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며칠 전 이를 원작으로 한 실사영화가 개봉돼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에 나섰다. ‘전체 관람가’ 영화라서, 게다가 애니메이션이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봤다. 기대가 크면 실망 또한 크기 때문에. 하지만 기대를 하지 않아서였을까. 예상 외의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 ‘역시 나는 미녀와 야수의 팬이구나’라는 생각도 곱씹었다.

영화 ‘미녀와 야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세계 최고의 인기배우인 엠마 왓슨이 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라라랜드’를 거절하고 선택한 작품이라는 데서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라라랜드는 베니스영화제, 골든글러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라라랜드에서 엠마 왓슨의 대체자였던 엠마 스톤은 세계 영화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그래서 혹자는 엠마 왓슨이 영화를 선택하는 안목에 문제가 있거나 상복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엠마 왓슨에게 쏠린 이 같은 의문은 그가 얼마 전 한 인터뷰를 보면 어느 정도 풀린다. 엠마 왓슨의 인터뷰 요지는 “수년간 ‘미녀와 야수’에 집중해왔고 승마·춤·노래 연습 등을 해야 돼 할 일이 많았다. 그것 때문에 라라랜드까지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였다.

이 같은 그의 설명을 들으니 미녀와 야수에만 집중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어졌다. 흔히 좋은 제의- 영화·연극 등의 배역은 물론 어떤 기관의 중요한 자리- 가 들어오면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욕심을 내서 승낙을 해놓고는 어느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사례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봐왔다. 욕심이 부른 뼈아픈 실수다. 이런 측면에서 자신이 선택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꽤나 괜찮은 제의를 거절한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녀가 펼쳐온 그간의 행보를 보면 이런 행동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 벨을 연기한 엠마 왓슨을 보면서 그녀가 맡은 역할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간 세계를 열광시켰던 영화 ‘해리 포터’에서 똑똑하고 강인한 여성 헤르미온느로 이름을 알린 엠마 왓슨은 유엔에서 활동하며 양성평등문화 확산에 노력해왔다.

이 영화에서 벨은 지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으로 표현된다. 벨은 마을에서 인기가 높은 가스통의 구애를 거절하고 흉측한 외모의 야수와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비아냥 속에서도 책을 읽는 지적인 여성이며 책보다는 전쟁에 함몰해 있는 가스통이란 인물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등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이다. 이 영화 속 다른 여성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또 성안에 갇힌 아버지 모리스를 구하기 위해 직접 말을 타고 달려가며 마을 사람들로 인해 위기에 빠진 야수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능동적인 여성상도 보여주고 있다. 정해진 운명대로 살지 않으려는 캐릭터의 성격과 엠마 왓슨이 걷고 있는 행보가 일맥상통한 것이다. 이번 영화 촬영에서 그는 활동적인 벨을 표현하기 위해 코르셋 착용을 거부했는데 이런 그의 생각이 은연중에 스며든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엠마 왓슨이 벨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 진짜 벨처럼 느껴졌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이 영화를 보러갈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이 점을 상기시켜 주길 바란다.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벨의 모습과 엠마 왓슨의 개인적 삶의 가치를.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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