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백종원 신드롬 유감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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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9   |  발행일 2017-03-29 제30면   |  수정 2017-03-29
우후죽순격 먹·쿡방 러시
특정업소만 배 불리고 식당 간 위화감 조성하니
음식문화 신지평을 위해 식당위주 프로 자제해야
[동대구로에서] 백종원 신드롬 유감

백종원(이하 백). 현재 황교익과 함께 ‘한국 식품계의 슈퍼스타’다. 두 명 중 위세가 더 센 쪽은 백. 그는 1993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원조쌈밥집을 출발로 프랜차이즈사업을 비약적으로 확장해왔다. 백의 <주>더본코리아는 실내포차인 한신포차(98년), 우삼겹 전문인 본가(2002), 연탄불고기 전문 새마을식당(2005), 초저가 커피숍인 빽다방(2006), 멸치국수 전문 미정국수(2008) 등 20여개 브랜드에 국내 1천300여개, 해외 80여개 매장을 갖고 있다.

그는 먹방·쿡방 춘추전국시대의 최대 수혜자였다. 2015년은 단연 백의 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시작된 백의 인기는 채널을 넘나드는 ‘흥행보증수표’였다. 특히 그해 8월부터 방영된 ‘백종원 3대천왕’은 소개된 업소를 대박업소로 둔갑시킬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묻고 싶다. 백의 신드롬은 과연 누굴 위한 걸까? 가장 해피한 사람은 ‘백’뿐인 것 같다. 그가 한국 식당가를 더욱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직감도 들었다. 충주시 무학시장 명물인 ‘감자만두 거리’를 취재할 때였다. 3대천왕에 소개된 업소는 감자만두 원조인 D분식. 감자만두만 취재했다면 시장은 물론 감자만두 관련 업소 모두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딱 한 집만 소개된다. 확인해보니 감자만두는 집집마다 특색이 있고 평균적으로 다 괜찮았다. 소개된 업소는 원조란 사실을 제외하곤 내세울 게 별로 없었다. 딱 한 곳은 ‘무리수’였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황태덕장 특구의 황태해장국 편도 마찬가지. Y식당의 황태해장국만 노출됐다. 평온했던 식당가가 발칵 뒤집어졌다. 황태촌 터줏대감이랄 수 있는 J식당은 된서리를 맞는다. 관련 식당주는 “특정 업소만 좋고 나머지 업소는 슬프게 만드는 3대천왕은 내겐 솔직히 3대악마 같았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어떤 식당주는 “왜 백은 괜찮은 식당은 다 피해다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소개된 업소도 마냥 좋은 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손해다. 일차적으로 토박이 단골은 성가시게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다른 데로 가버린다. 쇄도하던 방문도 이내 시들해진다.

백의 행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감지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찬열 의원은 “더본코리아는 현재 도소매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으로 지정받아 신규 사업 진출 과정에서 법적 제약을 거의 받지 않는 반면 세제 혜택 등을 누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맛집들의 노하우를 결국 더본코리아 성장에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편의점 CU가 히트시킨 ‘백종원 간편식 도시락 시리즈’도 백의 명성을 이용한 음식이란 비판도 있다. 더본코리아는 별도로 광고할 필요도 없다. 백 회장이 고액의 출연료도 받고 방송으로 자꾸 유명해지고 사업까지 잘된다. ‘1석3조 행운아’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이런 선언을 했으면 싶다. ‘나의 명성은 민폐란 생각이다. 이제 방송 안 하고 사업에만 매진하겠다’. 그럼 과연 그의 사업이 망할까.

한국은 소문에 잘 혹하고 독창적 업소보다 카피식당이 주종이라서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 특정 업소만 집중조명되는 건 ‘치명타’일 수 있다. 외국은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제각각 특색이 있어 방송에 나온다고 해서 손님이 폭증하지 않는다.

요즘 방송가는 ‘그 나물에 그 밥’ 스타일의 식당 위주 먹·쿡방에서 탈피하려 한다. 2011년부터 방영된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 지난 주부터 방영된 나영석 PD 연출 tvN ‘윤식당’도 그렇다. 윤식당은 제작진이 발리섬에 임시 마련한 한식당이다. 캐스팅한 윤여정을 식당주로 불러 현지인에게 한식을 판다는 콘셉트다. 거기엔 특정식당은 없다.

특정업소 배 불리고 위화감 조성하고 제작자 편의주의에 매몰된 먹·쿡방도 이참에 전격적으로 해체됐으면 싶다. 3대천왕도 물론. 그렇지 않으면 불원간 개미 식당주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먹·쿡방 불매운동을 할 것이다. 제발, 먹는 것 갖고 장난치지 말자!

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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