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지금, 영화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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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9 07:54  |  수정 2017-03-29 07:54  |  발행일 2017-03-29 제23면
[문화산책] 지금, 영화 시작합니다
권현준 <오오극장 기획홍보팀장>

뜬금없이 강릉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주 금요일 강릉에서는 사라졌던 소중한 것이 다시 돌아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반가운 인사를,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오래 기다렸다. 1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기약 있는 1년이었다면 쉬는 셈, 편하게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약 없는 1년은 꽤나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와 준다고 하였고, 그렇게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강릉에 있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 관한 이야기다. 대구의 한일극장처럼 ‘약속의 성지’이자 강릉의 대표 극장이었던 신영극장은 강릉에 멀티플렉스가 막 자리 잡기 시작할 즈음인 2009년 폐관됐다. 그러던 중 강릉에서 독립영화, 예술영화, 고전영화 등을 꾸준히 상영해오던 강릉씨네마떼끄가 강릉에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신영극장을 독립·예술영화전용관으로 운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5월18일 강릉 시민들과 영화인들의 후원으로 지역 유일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인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 탄생했다.

극장이 생기기 전, 강릉에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보려면 씨네마떼끄 사무실 한편에서 봐야만 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릉의 극장 어디에서도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상영하는 사람에게나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나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을 연 지 채 4년도 되지 않은 2016년 2월29일 기약 없는 이별을 고해야만 했다. 극장 개관 이후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을 통해 지원을 받아왔지만, 2015년부터 바뀐 사업에는 극장의 고유권한인 프로그램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사업으로 인해 대구의 동성아트홀 역시 폐관의 위기에 처했다) 당장 지원이 없으면 운영이 어려웠지만, 극장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극장은 임시 휴관에 들어갔다. 지금에서야 드러났지만, 이 일련의 과정은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히 지난 24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 1년여 만에 다시 관객들을 맞았다. 그 1년은 무엇이 소중한 것을 사라지게 했는지,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극장 프로그래머는 지난 1년 동안 이 말을 하기 위해 기다려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금, 영화 시작합니다.” 앞으로도 이 말을 계속 들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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