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사필귀정

  • 장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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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8   |  발행일 2017-03-28 제30면   |  수정 2017-03-28
20170328
장용택 중부지역본부장

지난 한 주가 악몽 같았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느라 잠을 설쳤고, 전해 오는 뉴스 하나하나에 장탄식을 했다는 것이다. 기자 또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2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귀가하기 몇 시간 전인 새벽 4시쯤 세월호가 1천70여일 만에 인양되리라는 뉴스가 나왔다. 삼성동 자택 앞에서 활짝 웃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과 수백 명의 인명을 앗아간 세월호의 처참한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싶었다.

2014년 4월16일 기자는 오전에 출근해서 시시각각 전해져오는 세월호 침몰 모습을 지켜봤다. 아니, 발을 동동 굴렀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런 대형참사가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했다. 오전 10시가 넘어서면서 ‘단원고 학생 전원 구출’이라는 속보가 떴다. “아, 다행이다. 큰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하며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대형사건을 접했던 직감으로선 “어, 아닐 수도 있는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어 전원 구조 보도는 오보였음이 밝혀졌으며, 실종자 수가 시시각각 표시되고 있었다. 오후 늦게 뒤집힌 세월호가 물기둥을 토해내며 침몰했다.


한순간 떠오른 삿된 생각에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오후 5시쯤 중대본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구조할 수 없었나요?”라고 되묻는 박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분위기 파악을 못 할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기자뿐만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세월호 7시간 의혹이 시작된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못 박고
국정농단을 방치한 대통령
자리 잃고 피의자 신분 전락
4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국민만 생각하는 후보 뽑길


한 달여 뒤인 5월23일 박 대통령은 세월호 담화에서 세월호 사건은 총체적 부패 때문에 발생했다고 못 박으면서 관피아 척결과 국가 대개조를 공언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는가. 부패 척결은 국정농단으로 이어졌고, 관피아 척결 대목에선 고작 소수의 하위직만 사법처리됐다. 국가 대개조는 힘없는 해경 해체에만 그쳤다.

팬티 바람으로 승객 행세를 하면서 맨 먼저 구조된 뒤 입원실에서 젖은 돈을 말리던 세월호 선장. 1심에서 징역 36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살인죄를 이례적으로 추가해 무기징역이 확정돼 수감 중이다.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이 가득 찬 세월호 구조현장에서 쭈그리고 앉아 컵라면을 먹거나 인증샷을 찍던 정신 나간 정부 인사들도 있었다. 여권 국회의원들은 한술 더 떠서 ‘세월호 특조위는 세금도둑이다’ ‘세월호 사고는 단순한 해상교통사고다’ ‘이러고 있으면 세월호 학생처럼 다 빠져 죽는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했지, 선조 임금이 했는가’라고도 했다. 유가족과 대다수 국민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정권 초기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났던 적폐를 해소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오히려 교만에 빠졌던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측근의 국정농단을 방치한 탓에 헌법재판소에서 탄핵되고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했으며, 27일 구속영장 청구에 이어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박근혜호(號)는 침몰하고 만 것이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선실에서 기다려라”라는 지시에 따랐지만 희생된 학생들의 마지막 모습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구명조끼를 학생들에게 벗어준 뒤 선실에 있는 제자들을 구하러 들어갔다 희생된 여러 선생님들의 의로움을 모독해서도 안된다.

19대 대통령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부질없는 부탁이지만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국민만 바라보는 정권이 창출돼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 지도자들은 외롭고 괴로운 순간이 닥치더라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면서 그 안에서 해답을 찾기를 바란다.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선장과 같은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불행이 반복돼서는 안된다.장용택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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