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0.917-우리가 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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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7 07:58  |  수정 2017-03-27 07:58  |  발행일 2017-03-27 제22면
[문화산책] 0.917-우리가 보는 것들
박정현 작. 글을 쓰고 91.7%를 지운 평면회화.

현대인에게 부족함의 불편함은 사라지고 지나친 편리함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우리는 오히려 무지해지고 생각할 여유는 사라진다. 지나친 정보에 노출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접하게 됨으로써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보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 믿고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희생되었을까?

우리가 눈으로 보는 빙산은 전체의 8.3%, 수면 아래에 91.7%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 생각, 오해, 그리고 판단을 하고 실수를 저지른다.

실제로 해수면 위에 드러난 빙산은 일각일 뿐 빙산이 50%만 보였더라도 타이태닉이 침몰하지 않았을지 모르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것, 보지 못하는 것으로 크고 작은 사고들을 만든다. 단어는 보지만 글은 읽지 못하고 글은 읽지만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작품에는 10%보다 적은 것을 드러낸다. 하고 싶은 말들은 많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없고 더 큰소리로 말해보지만 그 말들은 오해로 남는다. 수십 번 수백 번을 삼켜도 다 삼킬 수 없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고백이든, 억울함을 호소하는 죄인의 통곡이든 소리 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을 적어나간다. 부끄러워서 고백할 수 없었던 말도, 미운 사람에 대한 마음도, 잘못된 것에 대한 경고도 아무런 형식에 구애 없이 대나무 숲에서 소리 지르듯 적고 91.7%를 지워버린다.


[문화산책] 0.917-우리가 보는 것들
박정현 <설치미술 작가>

0.917- 우리가 보는 것들

우리가 보는 것은 사람의 손톱이며

우리가 보는 것은 집의 대문 한쪽이며

우리가 보는 것은 자동차의 오른쪽 와이퍼이며

우리가 보는 것은 호수의 물 한 방울이며

우리가 보는 것은 문장의 점 하나일지 모른다.
박정현 <설치미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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