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봄 언덕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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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7 07:48  |  수정 2017-03-27 07:48  |  발행일 2017-03-27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봄 언덕에 올라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사흘이 멀다 하고 지면을 장식하는 제4차 산업혁명 관련 기사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에 어느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수학 문제를 잘 풀고, 많은 내용을 남보다 빨리 암기하고 오래 기억하는 능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어느 교수님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기 아이에게 학원을 끊게 했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그러나 문 밖을 나서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국영수 등 주요 과목 내신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시험 점수에 목숨을 거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점수 올리기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예민한 감수성과 창의력까지 동시에 갖추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엄마의 하소연이다.

모든 시대는 살기 어려웠고, 자녀 양육이 쉬운 시대는 없었다. 우리 조상은 살아남기에도 막막한 현실 앞에서 ‘자기 먹을 복은 타고 난다’라고 말하며 아이가 맞이할 미래의 불확실성을 떨쳐보려고 애썼다. 산업사회까지만 해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서 시키는 것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었고 졸업 후 취직하여 비교적 쉽게 홀로서기를 할 수 있었다. 오늘의 부모님들은 그때가 부럽다고 말한다.

장차 어떤 상황 변화가 오더라도 학생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익히기 위해 여전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한 암기 능력 테스트는 사라질 것이고, 개념과 내용을 다 알고 풀이 과정도 맞는데 계산 실수로 운명이 뒤바뀌는 시험체제는 달라질 것이다. 창의력이란 어느 정도 지식이 축적되어야 배양될 수 있는 능력이다. 아무런 예비지식이 없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서 창의적 사고는 나오기 어렵다. 그러나 과거처럼 일주일 내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그런 방식은 교과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공부할 때는 눈빛이 종이를 뚫을 정도로 집중하고 놀 때는 맘껏 노는 것이 좋다.

인류 역사상 레오나르도 다빈치만큼 균형 잡힌 오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드물다. 그가 살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오감의 균형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그 균형은 깨어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지나치게 강조되었고, 인쇄술의 발달로 이성과 합리성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풍조가 힘을 발휘했다. 오감의 융합과 감각의 통합에 근거한 입체적인 고대적 상상력은 급속히 퇴화했다. 이제 다시 우리는 상상력과 감각의 확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주중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주말에는 온 가족이 들과 산으로 나가보자. 자연 속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영감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학업과 놀이의 조화, 독서와 사색을 통한 창의력 배양, 합리성의 추구와 예민한 감성, 이런 자질들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봄꽃들이 화사하다. 봄 언덕에 올라 먼 산의 아지랑이를 바라보자. 봄꽃에 취할 수 있는 감성과 여유, 이것이 바로 미래를 위한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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