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종심소욕불유구-적극적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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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7 07:48  |  수정 2017-03-27 07:48  |  발행일 2017-03-27 제17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난 후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격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노인과 탄핵 결정을 수용하는 노인들이 충돌하는 소위 노노(老老)갈등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탄핵을 반대하는 노인과 찬성하는 젊은이들 사이의 노소(老少)갈등이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은 노노갈등과 노소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많기 때문이다.

공자는 ‘위정편’에서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스스로 일어섰으며, 마흔 살에는 유혹 당하지 않았고, 쉰 살에 하늘의 명령이 무엇인지 알았으며, 육십에는 귀가 순해지고, 일흔 살이 되어서는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했지만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공자가 70이 돼 도달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는 적극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소극적인 자유는 부정하고 저항함으로써 얻어지는 자유다. 소위 자아 팽창 시기의 아이들이 매사에 반대하고 저항함으로써 자신의 독립성을 획득하려는 것과 같다. 또 역사적으로는 중세의 질곡을 벗어던진 현대문명의 자유가 바로 그런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반대와 저항을 통한 자유는 종심소욕불유구에 비해 매우 유치한 수준의 자유다.

그러나 적극적인 자유는 매사를 긍정하고 수용하는 데에서 얻어진다. 적극적인 자유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만큼 자신의 그릇만큼 커지는 것이다. 예컨대 다른 문화의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만큼 여행의 자유가 커지는 것과 같다. 적극적인 자유를 성취한 사람은 어느 곳에 가도 갈등하지 않고 잘 어울릴 수 있다. 그래서 종심소욕불유구는 공자가 말하는 조화(和)와 같다.

종심소욕불유구와 같은 경지가 ‘자한편’에도 나온다. 공자가 말한 절사(絶四)의 경지가 그것이다. 즉 공자는 의도하고 기필하며 고집하는 ‘나’라는 마음을 끊었다고 하였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주자는 의(意)란 움직이는 정(情)이 어떤 지향을 갖고 꾀하고 헤아리는 것이라고 했으며, 기필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러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기필하게 되고 고집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 노여움과 미움의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것의 원인은 결국 ‘나’라고 하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무아(毋我)’는 ‘태백’에서 증자가 안회를 묘사한 부분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증자가 안회를 묘사하기를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사람에게 물으며, 학식이 많으면서 적은 사람에게 물으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여기고, 가득해도 빈 것처럼 여기며,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해도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무아의 경지이고 또 종심소욕불유구의 경지인 것이다. 아무쪼록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둘러싼 대구·경북 지역의 노노갈등과 노소갈등이 공자의 적극적인 자유를 통해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란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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