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참여 차단”…꼼수주총 된 슈퍼주총 대책없나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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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5   |  발행일 2017-03-25 제11면   |  수정 2017-03-25
올해도 3월 24일 대거 몰린 상장사 주주총회
20170325

◆해마다 반복되는 슈퍼 주총데이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등 국내 상장사의 절반가량인 1천여개 기업이 24일 주총을 열었다. 투자의 기본대로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은 소액 주주들은 주주 총회장에서 이뤄지는 주요 의사 결정과정에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 기업들이 같은 날 주총을 열어 이를 원천 차단했기 때문이다.

주총에 상정된 안건들은 현장에서 표결에 부쳐지기 때문에 주총장에 참석하지 않으면 의견을 나타낼 기회가 사라지고, 이런 탓에 슈퍼 주총데이는 소액주주 의결권 제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24일에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계열사와 SK텔레콤 등 SK그룹 계열사 등 총 1천곳이 넘는 상장사가 정기 주총을 열었다. 특히 24일은 그야말로 슈퍼 주총데이였다. 코스피 410여개사, 코스닥 490여개사 등 920여개사의 주총이 진행된 것이다.

앞서 지난 12~18일에도 적지 않은 상장사의 주총이 열렸다. 이 기간 정기 주총을 연 12월 상장법인은 현대차, LG전자, 셀트리온, 카카오 등 총 211개. 이중 10곳 중 8곳 이상(83%)인 175개사의 주총이 지난 17일에 열려 또 하나의 슈퍼 주총데이로 기록됐다. 현대차그룹과 LG그룹 계열사, 아모레퍼시픽, GS리테일, 롯데손해보험 등 110개사, 코스닥시장에서는 GS홈쇼핑, 컴투스 등 65개사가 이날 주총을 열었다.

소액·개인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큰 슈퍼 주총데이에 대한 비난은 올해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난해의 경우 3월 마지막 금요일인 25일은 814개사, 전체 상장법인의 40%가 넘는 기업들이 동시에 정기 주총을 연 슈퍼 주총데이였다. 2015년에도 810개사가 3월27일 한꺼번에 주총을 열었다.

이런 상황이 최근 5년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예탁원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12월 결산 상장사의 주총 현황을 분석한 결과 3월21~31일 열린 정기주총은 7천41차례로, 전체(8천874차례)의 80%를 차지했다.

개최 요일로는 금요일이 70%에 달해 매년 3월 하순 금요일마다 주총 쏠림 현상이 극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시간대도 거의 같아 몸이 두개가 아닌 다음에야 참석하기 힘든 상황이다. 주총 시간은 오전 9시와 10시가 88.2%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같은 날 개최하는 것도 모자라 일부 기업은 주로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나 사업자 등록증에 있는 본사가 아니라 지방 공장 등 법인 등기부등본상 본사 소재지에서 주주총회를 열기도 한다. 관련 법에는 저촉되지 않지만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어렵게 하기 위한 상장사의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기업들은 사업보고서를 각 사업연도 결산일 후 90일 이내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하는 탓에 3월 말까지 주총을 열어야 하는 구조상 어쩔 수 없이 날짜가 겹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의 말에 무게를 두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최근 5년간 12월결산 상장기업 주총
3월21∼31일 열려 전체 80%나 차지
동시간대 쏠리면 참석 사실상 힘들어


주총 상정된 안건 현장서 표결 부쳐
참석 못하는 주주 의결권 행사 못해
일부는 본사 소재 지방공장서 열기도


입맛에 맞지않는 주주 권리행사 막아
상장기업을 개인기업화 하려는 속내
주총 투명성 강화 대책마련 필요 지적


불참 주주가 인터넷으로 의결권 행사
국회서 논의 ‘전자투표 의무화’ 주목
기업 반발 만만찮아 제도화 진통 예상


◆슈퍼 주총데이, 막을 방법은 없나

상장사가 이렇게 슈퍼 주총데이를 통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제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 공개를 통해 많은 소액주주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자신의 개인회사처럼 기업을 운영하고 싶어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주주들의 권리행사를 막아 불투명하게 기업을 운영하고 싶다는 내심을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주총에서 소액주주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총의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전자투표 의무화’를 꼽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은 3월 임시회에서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를 포함한 상법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는 일정 주주 이상이거나 일정 자산규모가 넘는 상장사의 경우 전자투표 의무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주주 1천명 이상, 대만은 1만명 이상이 되면 전자투표를 의무화하고 있다.

물론 현행법상 현재도 전자투표를 시행할 수 있지만 의무가 아닌 탓에 이를 활용하는 경우는 극히 적은 상황이다.

2010년 도입된 전자투표제는 회사가 전자투표시스템에 주주명부와 주총 의안 등을 등록하면 주주가 주총 현장에 직접 참석하지 않더라도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권리 행사기간은 공휴일을 포함해 주총 전일까지 총 10일이어서 주주의 참여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도 도입 이후 4년간 주총에 이를 적용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가 2014년 섀도보팅(한국예탁결제원이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의 의결권을 대신 행사하는 의결권 대리 행사 방식)이 전자투표제 도입 기업에 한해 허용되면서 2014년 말 79개 기업에 불과했던 도입 기업은 지난달 24일 총 1천92개(코스피 321개, 코스닥 725개, 기타 46개)로 늘었다.

하지만 현재 전자투표는 섀도보팅을 이용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대주주 측에 유리한 섀도보팅을 실시하려면 전자투표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 소액주주를 위한 전자투표가 아니라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전자투표 이용사 중 94%는 섀도보팅을 신청했고, 이와 상관없이 전자투표를 이용한 기업은 극히 일부에 그쳤다. 금융당국은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해 2015년 섀도보팅을 폐지하려고 했지만, 기업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3년간 유예한 상태다. 여기에다 전자투표 의무화에 대한 기업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어서 관련 법안 통과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상장사 관계자들은 “전자투표제 의무화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실제로 기업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현실성 있는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인터넷 주총’도 기업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인터넷 주총은 주주총회장에 가지 못하는 주주를 위해 영상으로 현장을 생중계하거나 온라인으로 주주포럼을 열어 제안 내용을 논의할 수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주주 의견을 받는 ‘하이브리드 주총’을 열고 있고, 휴렛-패커드(HP)는 2015년 온라인으로만 주총을 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영국, 독일 등 대다수 국가는 주총에 무관심한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주총장에 참석해 보유한 주식 수를 기준으로 결의하고 있다”며 “소액주주의 의사가 기업 경영에 유효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주주권 행사방안을 소액주주 입장에서 다양하게 마련해야 기업 투명성도 강화되고 경쟁력도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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