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시작이 반

  • 마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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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3   |  발행일 2017-03-23 제31면   |  수정 2017-03-23

‘취준생(취업준비생), 공시생(공무원시험준비생), 대졸 취업난, 청년실업.’

신문과 방송에서 얼마나 자주 다뤘는지 인터넷 검색창이 익숙지 않은 ‘아재’들도 이 말에 익숙한 세태가 됐다. 먹고살기가 얼마나 팍팍한지 실감나게 하는 단어들이다.

실제 ‘취업난’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 난제는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깊숙이 침투해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비롯한 기초학문을 갈고닦는 데 주력해야 할 상아탑마저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그 예다.

이처럼 대학 스스로가 본분을 망각한 채 취업률에 목을 매달아야 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입시생과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사가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서 ‘취업률이 높은 학과’로 옮겨진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취업에 불리한 인문계열 학과의 인기가 급락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수도권 한 대학은 학교 홈페이지에 버젓이 “대학에 진학하는 이유는 바로 취업이다. 취업률 높은 학과는 어디일까”라는 글귀와 함께 IT 관련 학과 취업률이 100%임을 자랑하면서 신입생 유치에 열을 올릴 정도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실용형 인간’의 폭발적 증가와 무관치 않다는 데 있다. 실용형 인간은 자신의 이익과 직결되는 현상에 민감한 반면, 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내야 할 사회적 이슈와 가치 등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타인이나 공동체의 문제에 앞서 자신의 이익에 몰두하는 성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극단으로 치닫는 개인주의에서 비롯되는 사회병리현상(인간성 상실)과 이를 수습하기 위해 공동체가 함께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 등을 감안하면 결코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최근 들어 인문학 강좌의 개설을 알리는 보도자료가 부쩍 잦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강좌를 거쳐간 수강생들이 당장 시대적 가치에 대해 고찰하고 사회적 현상에 대한 옳고 그름을 고민하는 ‘이념형 인간’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삶’이 아닌 ‘생존’으로 내몰리는 각박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이웃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함께하는 공동체를 생각하며 자기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조금씩 늘어나는 현상에 의미를 두고 싶다.

마창훈 경북본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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