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장애인 인권 유린

  •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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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3   |  발행일 2017-03-23 제30면   |  수정 2017-03-23
[취재수첩] 장애인 인권 유린
김기태기자<경북부/포항>

지난해 청주에서 ‘19년간 축사노예’ ‘20년간 타이어노예’ 등 지적장애인 인권 유린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다른 지역의 일로만 생각했던 기자는 지난달 충격적인 제보 하나를 받았다. ‘현대판 노예’ 사건이 포항에서도 일어났다는 것이다.

지적장애인 김모씨(57)는 포항시 남구의 한 돼지축사와 북구의 한 목욕탕에서 노예노동과 폭행을 당하다 초등 동창들의 도움으로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났다. 동창들에 따르면 축사에서는 돼지가 죽으면 주인으로부터 매질을 당하고, 목욕탕에서는 배가 고파 계란을 집어들었다가 주먹질을 당했다. 어처구니없게도 김씨가 ‘돼지축사’에서 벗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목욕탕’이라는 또 다른 지옥에 갇혔고, 목욕탕 주인은 놀랍게도 김씨의 매형(妹兄)이었다.

한편으로 IQ 50~70 수준인 김씨가 그동안 겪은 일(노예노동, 폭행)을 기억하고 동창들에게 사연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점은 참으로 다행이다. 장애인 인권 유린 사건이 하마터면 소리 없이 묻힐 뻔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얘기를 들은 동창들은 ‘우리 친구에게 몹쓸 짓을 한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관련 당국에 사실을 알렸고, 결국 경찰 수사로 이어지면서 이번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제 가해자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진행 과정과 처벌을 유심히 지켜볼 때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가해자 2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김씨의 수협 통장 사용내역서를 보면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체크카드로 돈이 인출됐다. 김씨의 매형이 의도적으로 체크카드를 발급받았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또 사건이 불거지자 김씨의 매형은 자신이 빼내 쓴 김씨의 정부보조금을 다시 입금시키는 등 사실을 감추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김씨의 매형은 공기업의 이사까지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지도층으로 누구보다 도덕성을 갖춰야 할 인사가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보호하고 도와주기는커녕 최소한의 생활비마저 착취해 온 행태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김씨의 기초주거급여 등 정부보조금을 개인용도로 사용한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김씨의 매형은 여전히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김씨의 동창과 장애인단체는 김씨의 매형이 사회지도층인 점을 내세워 사건 무마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은 장애인 인권 유린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너무나도 관대했다. 전남 신안의 ‘염전노예’ 사건 가해자 대부분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법원은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들을 선처했다.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판결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여태껏 달라진 게 없다.

장애인 인권 유린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근절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장애인 인권 유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제도적 변화를 꾀할 때이다.
김기태기자<경북부/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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