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여는 ‘벽화 봉사’ 동네가 화사해졌어요

  • 문순덕 시민 박태칠 시민
  • |
  • 입력 2017-03-22   |  발행일 2017-03-22 제12면   |  수정 2017-03-22
20170322
반 벽화봉사단원들이 지난 19일 동구 안심근린공원 내 화장실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대구 동구‘반 벽화봉사단’
혁신도시 굴다리 등 작업
우범지대가 포토존 변신


반(Van) 벽화봉사단은 6년 전 “우리 동네 분위기를 벽화로 바꾸어 보자”는 대구 동구 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의 제안으로 창단돼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어져 오고 있다. 봉사단 명칭은 ‘그림에 반하다’와 빈센트 반 고흐의 이름을 따서 ‘반(Van)’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벽화봉사단이라고 하면 으레 미술 공부를 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장혜숙 반 벽화봉사단 회장(51·대구시 동구 효목2동)을 비롯해 그림을 전공하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이 다수다. 초창기에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고 어려운 고비를 이겨낸 지금은 학생(초·중·고·대학생)과 일반인 등 단원이 30여 명으로 늘어났다.

자원봉사자들은 주민 의견을 수렴하며 신바람 나게 벽화를 꾸며 동구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봉사단원들은 추운 날씨 때문에 페인트 색깔을 만드는 것이 힘든 12~2월 작업을 중단했다가 3~11월 매달 1~2회 작업을 하고 있다. 벽화 봉사를 하면서 힘든 점은 뜨거운 여름에 유성 페인트로 작업할 때라고 했다.

단원 가운데 현재 전공자는 한 명으로, 고교생 때부터 지금까지 성실하게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다. 비전공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벽화를 그리는 회원들의 열정만큼은 대단하다. 중·고생들도 처음에는 행여 망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붓을 들고 밑그림 위에 칠하는 것조차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벽화봉사에 푹 빠져있다.

지난 19일에는 봄 단장을 하는 기분으로 동구 안심근린공원 내 낡은 화장실에서 꽃과 나비·하트 모양 등을 그리며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땀 흘렸다. 벽화 재료는 국제로타리 3700지구 초아의 봉사회에서 지원했고 대구 동부경찰서 직원들이 아이스크림 한 상자를 들고 와서 마음을 보탰다.

주변의 도움도 벽화봉사단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페인트·붓·의자·물통 등 그림도구 보관장소가 마땅치 않아 애를 먹었지만 최근 국제로타리 3700지구의 도움으로 고민을 떨쳐냈다. 또 높은 곳에 벽화를 그리려면 사다리가 필요한데 봉사자로 활동하는 정승훈씨(46)가 사다리 설치작업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재료 운반은 태흥실업에 다니는 자원봉사자가 이정수 태흥실업 사장의 지원을 받은 트럭으로 해결하고 있다.

벽화봉사단이 지금까지 벽화를 그리면서 가장 힘들고 보람이 있었던 곳은 지난해 11월 작업한 옛 동부정류장 맞은편 효목2동 70계단이다. 어르신들이 운동 삼아 오르던 70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작업할 때는 힘들었는데 완성했을 때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또 혁신도시 굴다리는 벽화로 꾸민 후 범죄의 위험이 사라지고 포토존으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되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굴다리 규모가 커서 이틀 동안 아침 일찍부터 해가 질 때까지 힘들게 벽화를 그렸다고 들려줬다.

장 회장은 “벽화를 그리다 보면 어르신들이 멀쩡한 벽에 웬 페인트칠을 하느냐”고 핀잔을 주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어르신들이 “지저분한 벽에 이렇게 예쁜 그림을 그려 주어서 고맙다며 감자도 삶아 주고, 음료도 주면서 잘했다고 칭찬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글·사진=문순덕 시민기자 msd5613@hanmail.net


20170322
프레스코봉사단과 공군군수사령부 부사관 및 가족들이 빌라 주차장에서 벽화작업을 펼치고 있다.

계명대 프레스코 봉사단
공군군수사령부 부사관단
함께 환경개선사업 나서


대구시 동구 신천3동 한 빌라 주차장. 차량은 보이지 않고 바닥에는 담배꽁초뿐이었다. 먼지가 쌓인 벽에도 검은색으로 휘갈겨 쓴 낙서가 가득했다. 대낮인데도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는 마치 범죄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지난 18일 오전 9시쯤 이곳에 몇 명의 대학생이 나타났다. 곧이어 짧은 머리의 건장한 남자들과 가족들이 왔다. 어림잡아 양측을 합쳐 60명은 넘어 보였다. 대학생들은 계명대 시각디자인과 1~2학년으로 구성된 프레스코봉사단(회장 장수현)이고 짧은 머리의 건장한 남성들은 공군군수사령부 부사관단(대표 신호욱 주임원사)과 가족들이었다.

이들이 찾은 빌라는 평소 청소년들이 드나들며 흡연을 하는 등 범죄우려지역으로 동부경찰서 동대구지구대에서 범죄예방을 위해 순찰을 강화하는 등 관심을 기울여왔음에도 주민불안감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동대구지구대는 밝고 깨끗한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범죄예방에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 아래, 프레스코봉사단 및 부사관단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서 ‘엄마품愛 프로젝트’를 펼치기로 했다. ‘엄마품愛 프로젝트’는 동부경찰서와 동구자원봉사센터가 벌이고 있는 우범지역 환경개선사업이다.

이날 대학생과 군인봉사단이 벽화작업을 마치면 CCTV와 LED등이 설치될 예정이다. 작업은 우선 부사관들이 롤러를 이용해 벽면과 기둥을 하얗게 도색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힘과 솜씨가 좋은 군인들이 나서자 주차장 벽면은 금세 거대한 캔버스로 변했다. 다음은 그림그리기 차례. 벽면은 프레스코봉사단이, 9개의 주차장 기둥은 부사관단과 가족들이 맡았다. 이를 지켜보던 빌라 주민과 이웃들도 한마디씩 칭찬을 하며 음료를 사들고 왔다.

“저 구석 컴컴한 데서 청소년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불도 놓고 해서 무서웠는데 이제 벽화를 칠하고 밝게 해준다니 큰 걱정을 덜었다.” “우야꼬! 저 사람들,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데 뭐 좀 먹을 거라도 챙겨야 안 되나?”

격려와 칭찬에 신이 난 봉사자들도 힘을 냈다. 그림 솜씨가 좋은 윤창준 준위가 봄까치와 꽃그림을 멋있게 그려냈고, 류형욱 주임원사는 캘리그래피 솜씨를 발휘하여 멋진 글씨를 썼다.

작업은 이틀간에 걸쳐 19일 오후 5시쯤 끝났다. 어둡고 음습하던 주차장에는 하와이풍의 시원한 바다, 빙과류와 함께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모아나 해적단도 익살맞게 그려졌다.

이틀 동안 주민들의 따뜻한 성원도 이어졌다. 담당 통장 채정숙씨는 성금봉투를 내놓았고 빌라 대표 노병수씨는 음료를 사왔다. 김태숙씨 등 빌라 주민들은 밤새 페인트 통을 지키기도 했다. 주민들은 십시일반 10만원의 성금을 모아 학생들에게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공군군수사령부 사령관도 부사관 가족들에게 금일봉을 보냈다. 보안업체 에스원도 CCTV 설치비용을 받지 않겠다고 나섰다.

그러고 보면 아직도 세상은 따뜻하다. 이날의 벽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자원봉사 활동의 스토리가 녹아든 감동이었다.

글·사진= 박태칠 시민기자 palgongsan72@hanmail.net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시민기자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