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어이없는 ‘서문시장 민심’ 경쟁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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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0   |  발행일 2017-03-20 제30면   |  수정 2017-03-20
[송국건정치칼럼] 어이없는 ‘서문시장 민심’ 경쟁

홍준표의 우파결집 마케팅
김진태의 박근혜 온기 찾기
실제 바닥민심은 갈곳 잃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중
치유,희망의 메시지 내놔야

5·9 대선 레이스가 본궤도에 오르자 보수 진영에서 느닷없이 ‘서문시장 마케팅’ 경쟁이 벌어졌다. 불씨를 지핀 이는 자유한국당 경선후보인 홍준표 경남도지사. 홍 도지사는 18일 대구 서문시장에서의 대선 출정식을 앞두고 “탄핵은 끝났다. 이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할 때다. 우파 대결집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더 이상 박 전 대통령에 매달리면 이번 대선은 없다”고 했다.

같은 당 대선주자인 김진태 의원이 발끈했다. 대구의 조원진 의원과 함께 태극기 집회에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그는 “서문시장은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가 있을 때마다 찾아가던 곳인데, 그곳에 가면 박 전 대통령이 생각나지 않겠느냐. 서문시장에서 출정식을 갖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받아쳤다. 이에 홍 도지사는 “서문시장이 박근혜 시장인가. 내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서문시장에서 놀았다. 내가 더 인연이 많다”고 되받았다.

홍 도지사는 영남일보 인터뷰에서 자신이 경남 창녕 출신이지만 영남중·고교 등을 다닌 점을 들어 “내가 TK의 성골(聖骨)은 아니지만 진골(眞骨)은 된다”고 했다. 보수의 본산인 TK 그리고 TK 정서를 대변하는 서문시장을 ‘우파 대결집’의 상징적 장소로 택한 셈이다. 반면, 김진태 의원은 서문시장을 박 전 대통령의 온기(溫氣)가 그나마 남아 있는 곳으로 생각한 것 같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을 버리고 새로운 우파의 길을 가자고 주장하는 홍 도지사가 갈 곳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두 사람이 서문시장 공방을 벌이자 역시 한국당 대선주자인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엄중하게 경고했다. “서민과 상인의 아픔이 담겨 있는 서문시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중단하라. 서문시장의 애환도 모르는 손님들이 서문시장에 와서 싸우고 있으니 정작 어머니가 서문시장에서 팥죽을 끓여 팔고 시장통 알바(아르바이트)로 먹고자란 제 입장에서는 너무도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서문시장의 실제 민심은 무엇일까. 최근 각종 전문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TK=보수’라는 등식은 일단 깨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안희정·이재명, 국민의당 안철수 경선후보의 지지율을 다 합치면 60%가 넘게 나온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민주당이 1위를 차지한 지 꽤 됐다. 해체된 새누리당의 적통을 자임하는 한국당은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바른정당은 진보와 보수 사이에 ‘끼인 신세’가 돼버려 지지율이 바닥권이다. 일찌감치 대구·경북의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 뒤늦게 출발한 한국당 김관용 도지사에게도 지역 유권자들은 아직 확실한 호응을 하지 않는다. 무응답과 유보층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기는 하지만 그 표가 결국 보수후보에게 가리란 보장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박근혜·이명박 후보에게 보냈던 성원은 이제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보수 진영 대선주자들이 ‘서문시장 민심’을 서로 탐하는 건 밑바닥 여론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거나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TK 유권자들이 문재인이나 안철수에게 표를 주겠느냐, ‘박근혜 동정론’ ‘보수위기론’이 퍼지면 결국 보수후보를 선택하지 않겠느냐는 몽상을 하는지도 모른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가 현실화되면 부분적으로 그런 기류도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보수 전체가 뼈를 깎는 반성을 토대로 새 출발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구차한 연명을 위해 표를 달라고만 한다면 정반대의 현상이 생길 수 있다. 박근혜의 실패에 무기력한 보수의 모습이 더해진다면 서문시장 민심이 어떻게 표출될지 필자의 눈에는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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