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51 대 49’라는 신기루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3-18   |  발행일 2017-03-18 제23면   |  수정 2017-03-18
[토요단상] ‘51 대 49’라는 신기루
최병묵 (정치평론가)

“5월9일 대선에서 누가 이길 것 같아요?” 정치평론을 하는 필자가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필자의 대답은 거의 같다. 전제는 ‘과학적으로 말하면’이다. 그런 다음 가장 최근 여론조사를 인용해 분석을 해준다. 물론 필자의 경험과 전문성이 녹아있다.

역대 여론조사가 선거의 흐름이나 결과를 정확히 맞힌 경우는 흔하지 않다. 국내외 모두 그렇다. 15일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에서도 여론조사는 극우정당 우세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집권당의 승리였다. 작년 11월 미국 대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사회조사방법론을 대학에서 배우기도 한 필자가 조사 대상 추출→조사 문항 작성→실제 조사→집계→결과 분석의 과정을 거치는 이 과학적 기법을 외면할 순 없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과학’을 믿는다기보다 ‘현실’을 믿는 편이다. 각종 선거를 취재해온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 쪽이 진 경우가 많았다. 뒤집어 말하면 선거에서 뒤지는 후보는 여론조사보다는 ‘신념’에 의지하는 경향이 크다. 약자들은 “이번 조사는 응답률이 10%도 안돼. 90%의 의견은 반영돼 있지 않아” “최순실씨 사건 이후 보수세력이 특히 여론조사 전화에 응답하지 않는다더라” 등의 믿거나 말거나식 주장에 솔깃하게 된다.

5·9 대선을 앞두고 보수 세력 사이에도 급격히 이런 믿음이 퍼져가고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지난 8일 자유한국당 32명의 초선의원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기 죽을 필요 없다. 어차피 대선은 진영 싸움”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을 당했지만 유권자층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주장이다.

친박 세력은 작년 4·13 총선을 앞두고 자기 사람 심기에 열을 올렸다. ‘진박 마케팅’이 전국에서 고르게 눈총을 받았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싸늘한 여론과 무서운 결과를 조금이라도 감지했더라면 그와 같은 ‘막장 공천’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마음 놓고’ 친박 줄세우기식 공천을 밀어붙인 배경에 ‘진영 논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단정한다. 보수 세력의 표는 어떤 경우에도 더불어민주당으로 곧바로 넘어가진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기대가 그것이다. 이런 믿음은 보기 좋게 배반당했다. 보수 유권자의 상당수는 국민의당이란 대안(代案)을 찾아냈고, 더 많은 사람은 아예 투표장으로 가지 않았다. 필자가 과학적 방식으로 추정한 수치로는 한 지역구당 3천명 정도가 투표를 포기했다.

보수·진보의 구분 기준은 원래부터 애매하다. 혹자는 이런 분류법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란 주장도 서슴없이 내놓는다. 실제 보수·진보는 정권의 성격이 어떠냐, 정권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어떠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비율을 보인다. 진보정권인 노무현정부 때는 본인의 이념성향을 진보라고 응답한 유권자 비율이 보수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이명박 정권을 거치는 동안에도 보수는 항상 진보보다 2~9%포인트 이상 많았다. 이렇던 것이 작년 11월 한국갤럽조사에선 보수 26%, 진보 30%로 나타났다. 유권자들 사이에선 이미 ‘이념 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흔히 선거의 주요 변수를 구도, 인물, 정책으로 꼽는다. 유권자의 이념적 성향은 지역별 분포와 함께 구도의 주요 구성요인이다. 영남권의 몰표 현상은 작년 총선을 거치면서 상당히 완화됐다. 호남권의 몰표 현상은 대상이 민주당에서 국민의당으로 바뀌었을 뿐 총선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쳤다. 이 또한 호남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에 절대 유리하다. 이 때문에 어떤 경우든 선거 막판에는 ‘51 대 49’가 될 것이란 보수층의 기대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나 더 있다. 53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전 대표는 상수(常數)일 것이다. 구 여당인 자유한국당도 어떤 형태로든 후보를 낼 것이다. 안 전 대표는 이념적 중도와 호남표 일부를 가져갈 것이다. ‘51 대 49’라는 구도는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51 대 49’를 만들려는 노력이 정치권에서 활발해지겠지만 결코 쉽지 않다. 정치 취재 경험상 그렇다.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그런데 아쉽게도 욕심을 버리는 일은 대통령 당선보다 더 어렵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