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고난의 꽃

  • 원도혁
  • |
  • 입력 2017-03-18   |  발행일 2017-03-18 제23면   |  수정 2017-03-18

노란 개나리꽃이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개나리꽃을 보니 춘화(春化)현상이라는 다소 전문적인 용어가 생각난다. 가을에 심을 식물의 씨를 저온처리해 봄에 파종할 수 있는 씨로 변화시킨다는 말이다. 이 춘화현상과 관련해 인터넷에 떠도는 사연은 이렇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사는 어떤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 가져갔다. 자기집 마당에 심어놓으면 노란 개나리꽃을 볼 수 있겠지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 개나리는 가지와 잎만 무성했고, 이상하게도 꽃이 피지 않았다. 첫해여서 그런가 싶어 2~3년을 기다렸지만 노란 개나리꽃은 볼 수 없었다. 개나리는 꺾꽂이로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야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 자란 개나리는 한국의 개나리와 달리 꽃이 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개나리뿐 아니라 튤립·히야신스·백합과 같은 구근식물과 라일락 같은 나무도 추운 겨울을 견뎌내야만 꽃을 피우는 특성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봄보리보다 가을보리가 수확량이 많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혹독한 시련을 이겨냈기 때문에 생명력이 강해 열매도 많이 열리는 것이다. 울진의 저 장엄한 금강송들이 따뜻한 남부지방에 없는 이유도 비슷하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좋은 집안에서 이른바 ‘금수저’로 태어나 호위호식하면서 어려움 없이 자란 사람은 대개 제멋대로이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어울리기 쉽지 않다. 반면 고생을 하면서 자란 사람에게서는 인간적 향기와 내공이 느껴진다. 어떤 이는 ‘삶은 계란이다’라고 설파했다. 우선 계란처럼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또 노른자위만 먹지 말고 흰자도 같이 먹어야 영양 불균형을 방지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도 한 사람이 핵심요직을 독차지한다면 그 조직은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해석이다.

햇볕만 계속 내리쬐는 땅은 사막이 돼 버린다. 그늘과 비바람, 혹서와 혹한을 거쳐야 온전한 땅이 된다. 혹한의 겨울을 이겨내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꽃이 피는 개나리의 진실을 우리는 간과하기 쉽다. 온실 속에서 핀 꽃보다 비바람과 혹한을 견뎌내고 핀 꽃이야말로 진정한 꽃이다. 바로 고난의 꽃이다. 원도혁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