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정상화 그리고 자존심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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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5 07:48  |  수정 2017-03-15 07:48  |  발행일 2017-03-15 제23면
[문화산책] 정상화 그리고 자존심 회복
권현준 <오오극장 기획홍보팀장>

지난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해 오던 특검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결과에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정부 정책에 비판적이거나 견해를 달리한다는 이유로 그 지원을 배제함으로써 예술의 본질적 영역인 창작의 자유와 문화적 다양성을 침해하고 (중략) 우리 헌법의 본질적 가치에 위배되는 중대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한편 그 이전 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모 청와대 행정관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관리하는 것은 ‘정당한 통치행위’라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반대 논리라고는 하지만 죄가 없는 것을 넘어 정당하다고 한 것은 상식 밖의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이다. 그 기본권이 기본권을 수호해야 할 집단에 의해 조직적으로 침해당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예술가와 국민들이 정신적·물적 피해를 보게 만든 것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본질이다.

영화 분야에는 각종 지원 정책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기관으로 영화진흥위원회가 있다. 그런데 그동안 영화진흥위원회는 정상적인 지원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기보다 오히려 ‘지원 배제’를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겨 왔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예산 지원을 절반으로 삭감했고, 마찬가지 이유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결국 부산국제영화제는 파행을 겪었고, 독립·예술영화 전용관들은 문을 닫거나 닫을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처럼 실질적인 피해를 발생시키기도 했지만, 예술가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잔인한 폭력이기도 했다.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는 비판적 예술가들을 고문하거나 감옥에 가두는 등 물리적인 방식으로 탄압했지만, 지금은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돈’으로 옥죄고 있다. 이는 말하자면 배고픈 사람 앞에 빵을 두고 말 잘 들으면 이 빵을 주겠다는 식이다. 예술가들을 그 잔인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하는 것은 누구의 권한이란 말인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대책을 발표했다. 뒤늦게나마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정상화 대책을 세우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정상화와 자존심 회복의 전제조건은 ‘반헌법적인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관련자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얼마나 나쁜 행위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권현준 <오오극장 기획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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