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황금알을 낳는 씨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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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4   |  발행일 2017-03-14 제31면   |  수정 2017-03-14
[CEO 칼럼] 황금알을 낳는 씨수말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봄기운이 소생하는 3월, 전국의 말 생산농가와 목장은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시기다. 말 목장주들은 새로운 망아지의 출생을 고대하며 며칠 밤잠을 설치고, 내년을 기약하는 교배로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예나 지금이나 말의 생산은 국가의 부가 가시적으로 축적되는 기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나라의 강약은 말에 달려 있으므로 임금의 부(富)를 물으면 말을 세어서 대답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예부터 말이 국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유사 이래 한반도에 말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조선 성종 때로 약 4만 두가 길러지고 있었다. 2015년 대한민국이 보유한 약 2만6천 두보다 많은 수다. 끊이지 않았던 전란과 외세의 공마 요구에도 불구하고 마종 개량과 목자(牧子, 말을 돌보는 임무를 가진 官吏) 관리 등 국가가 마정(馬政)에 혼신을 기울인 덕분이다.

일제강점기에 말문화 단절로 우리의 마필생산수준은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거리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지속적인 노력으로 경주마의 80% 정도를 국내산으로 자급하는 등 외형적으로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쉬운 점은 경주마의 생산 부문에서 부가가치의 핵심이 되는 씨수말(종마) 분야다. 경주마는 국제적으로 혈통서를 가진 말들끼리의 자연교배만으로 생산된다. 따라서 경주마 생산은 해외 고가 브랜드의 로열티처럼 생산에 앞서 ‘교배료’라는 수익이 창출된다.

자마(子馬)들이 우승을 거듭할수록 그 씨수말의 교배료는 천정부지로 높아진다. 고가의 교배료 때문에 씨수말의 정액 한 방울은 다이아몬드 1캐럿에 비유되기도 한다. 여기에 일찍 눈뜬 국가들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종마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해외 유명 씨수말의 교배료는 국내에서 거래되는 데뷔 전 경주마의 가격보다도 높다. 우리가 말 생산의 양적인 부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질적인 부분의 성장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20세기 경마계를 장악한 품종, 서러브레드(Thoroughbred) 가운데 ‘북쪽의 춤꾼’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던댄서(Northern Dancer)’는 가장 성공한 씨수말이다. 경주로를 떠난 후 캐나다에서 씨수말 활동을 시작한 ‘노던댄서’는 1971부터 1983까지 미국과 영국에서 총 다섯 번 ‘최우수 씨수말(Leading Sire, 한 해 동안 자마들이 거둔 상금의 총합이 가장 많은 ‘아버지 말’로, 순위는 곧 씨수말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됨)’을 차지하면서 서러브레드계의 명문가를 형성했다.

국내에서도 ‘노던댄서’의 영향력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현재 활동 중인 2천여 두의 국내산 경주마 이름을 검색하면 두 마리 중 하나는 족보, 즉 혈통표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수년간 한국 경주마의 최우수 씨수말(리딩 사이어) 1위를 지키고 있는 ‘메니피’ 역시 ‘노던댄서’의 자손이다.

한국마사회가 수십억 원대의 씨수말들을 꾸준히 수입하여 생산에 투입하는 이유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2011년 세계 최초로 ‘말산업육성법’을 제정한 이래 정부와 한국마사회, 생산농가 모두는 씨수말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고가의 씨수말을 수입하며 경주마 개량을 위해 기울인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2월, 세계 최고 경주마들의 각축장인 두바이월드컵 예선경주에서 국내산 말이 우승하며 결승전에 진출, 세계와의 벽도 좁힐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어미 배 속에서 330일을 기다린 망아지들이 목장과 농가의 마방에서 세상의 빛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말 산업을 견인할 역군들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제2의 ‘노던댄서’나 ‘메니피’도 우리 땅에서 태어나리라 확신한다. 말 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고대하며 최전선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붓고 계신 말 생산농가들의 노고에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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