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라지는 것을 찍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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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4 07:54  |  수정 2017-03-14 07:54  |  발행일 2017-03-14 제23면
[문화산책] 사라지는 것을 찍는 이유
박지혜 디렉터가 2015년 대구 북성로에서 제작한 뮤직비디오 ‘철거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문화산책] 사라지는 것을 찍는 이유
박지혜 <영상서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어린 시절 잘 다루지 못하는 구식 카메라를 들고 내가 살았던 동네를 찾았던 적이 있었다. 재개발이 진행되기 직전인 옛 동네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서인지 더 가난하게 보였는데, 나는 곧 사라질 이 동네의 모습이 안타까워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동네 곳곳을 누비며 첫눈을 봤던 처마와 매일 드나들었던 철 대문, 개들이 묶여 있던 좁은 골목을 찍었다. 카메라로 모두 담은 후 내려오던 그 길에 한참을 서서 그 동네를 바라봤다. 내가 자란 그 동네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 속에 남기고 싶었다.

내가 살던 가난한 동네는 지금은 아파트촌이 됐다. 나도 중학생에서 30대 어른이 됐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것과, 사라지는 것들을 찍고 다닌다는 것이다. 숙명인지, 운명인지 나는 카메라를 드는 직업을 가지게 됐고, 대구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담는 일을 하고 있다.

왜 사라지는 것들을 찍냐고 사람들이 물을 때, 나는 내가 어릴 때 느꼈던 상실감을 떠올린다. 그 상실감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빨리 돌아가는 도시에서 어느 누구도 그 상실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속도는 항상 사람들의 속도보다 빠르고, 누군가의 기억을 담았던 공간은 순식간에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도시의 많은 사람이 마치 어린 시절의 나처럼 기억에 담았던 무언가를 상실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도시에서 사라지는 것을 찍음으로써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담고 싶었다. ‘왜 우리에게는 지워지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들이 당연한가’ ‘도시에서 기억이 왜 중요한가’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면서 말이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시의 속도를 늦추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상실감이 아닌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아버지와 만경관 앞을 지나면서 나누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느끼는 감정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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