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메가트렌드 읽기 .63] 탄핵과 여성리더

  • 입력 2017-03-13   |  발행일 2017-03-13 제29면   |  수정 2017-05-30
탄핵 당한 건 ‘여성대통령’이 아닌 ‘박근혜’
20170313
왼쪽부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라우케 페트리 ‘독일을 위한 대안(AfD)’ 공동의장,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세계의 여성 지도자들
후광 입은 경우 대다수 실패

英의 마거릿 대처 총리 등
실력형 인물은 100% 성공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식은 미국의 CNN방송, 뉴욕타임스, 영국의 공영방송 BBC 등 주요 외신들도 홈페이지 메인화면 톱뉴스로 다뤘다. 박 대통령이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의 전철을 밟게 됐다는 것이 골자였다. 박 전 대통령과 호세프 전 대통령이 한국과 브라질에서 각각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됐고,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순위에 이름을 올렸으나 결국 탄핵으로 중도하차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13년 이후 연속 3년째 11위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집계에서 포브스는 “세계 14위 경제 대국을 이끌면서 북한의 핵무기 실험에 반대하는 명확한 입장을 유지해 강대국의 지지를 끌어냈다”고 평가하면서 그를 메르켈 독일 총리,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에 이어 12위로 세계여성지도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호세프 전 대통령 역시 ‘포브스의 명단’에 이름이 포함됐었다. 그러나 호세프는 뇌물스캔들 연루설로, 박근혜는 ‘최순실’이라는 흑막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스스로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두 사람의 실패는 여성지도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출간된 ‘세계 여성 정치 실록’이란 책이 주목을 끌고 있다. 저자인 박영만씨는 이 책에서 세계 여성지도자 여러 명의 사례를 들며 아버지나 남편을 계승한 지도자 8명 가운데 통치에 성공한 사람이 매우 적었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자와할랄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 필리핀 상원의원 베니그노 아키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 2명을 제외하고 아르헨티나 이사벨 페론 등 후광을 입고 권력을 잡은 여성 지도자는 모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마거릿 대처 총리(영국), 골다 메이어 총리(이스라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칠레),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스리랑카), 헬렌 클라크 총리(뉴질랜드) 등 8명의 사례를 들어 순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지도자에 오른 이들은 100%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단숨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지도자의 반열에 올랐으나 결국 최초의 탄핵 대통령으로 몰락한 박 전 대통령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지적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탄핵을 당한 것은 ‘박근혜’이지 ‘여성대통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CNBC방송은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올해 세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분야에서 주목해야 할 여성 12인을 소개했다. 여기에는 세계 여성정치인 가운데서 이달 안에 유럽연합(EU) 탈퇴를 위한 2년간의 협상을 개시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프랑스 대선주자로 나선 마린 르펜 극우 국민전선(FN) 대표, 4선 연임을 노리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이에 맞서는 프라우케 페트리 ‘독일을 위한 대안(AfD)’ 공동의장이 포함됐다. 이들과 더불어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열리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여성들이 여러 명 가세했다. 대통령의 딸인 이방카 트럼프와 켈리앤 콘웨이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이 이름을 올렸고, 세계 금리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도 포함됐다. 특히 반(反)환경론자인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이해 패트리샤 에스피노사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이 주목을 받았다.

경제인으로는 미국 자동차 산업을 주도하는 메리 바라 제너럴 모터스(GM) 회장, 코카콜라를 꺾고 만년 2위였던 펩시를 100년 만에 1위로 올려놓은 인드라 누이 펩시코 회장, 아이린 로젠펠드 몬델레즈 인터내셔널 회장이 들어갔고, 영화 ‘문라이트’에 출연해 올해 아카데미상, 토니상, 에미상을 수상하면서 3관왕에 오른 최초 흑인 배우가 된 비올라 데이비스도 포함됐다. 한국에서는 언제 다시 세계 10위권의 여성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지, 대통령 탄핵으로 끝난 역사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yr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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