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悲運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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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1   |  발행일 2017-03-11 제23면   |  수정 2017-03-11
[토요단상] 悲運의 대통령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은 하나같이 끝이 좋지 않았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4월 혁명’으로 하야(下野)를 했다. 한 달 뒤 그는 하와이로 망명을 했다. 그리고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90세를 일기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총은 쏘라고 준 것이다”는 기자회견으로 하야의 빌미가 되었던 이기붕 부통령 일가족은 아들 이강석에 의해 모두 사살되고, 그 자리에서 이강석도 목숨을 끊었다. 한 편의 처참한 비극이었다.

내각제하의 다음 대통령 윤보선도 군사쿠데타를 만났으니 뒤가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당시 홀로 피신했던 장면 총리가 카르멜 수녀원에서 나와 내각 총사퇴를 선언한 다음에도 윤보선은 1년 가까이 허수아비 대통령직을 유지했다. 그러다 민정 이양에 따라 하야를 강요당했다. 후일 그는 부인 공덕귀 여사와 함께 민주당 구파를 이끄는 야당 정치인으로 새 출발을 했다. 92세에 별세, 가장 장수한 대통령이란 기록을 남겼다.

제3공화국의 박정희 대통령 역시 18년이란 장기 집권의 수많은 영욕들을 심복 차지철과 함께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권총에 의해 마감을 했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이 재선이나 삼선에서 종신(終身)의 꿈을 접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시해(弑害)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육영수 여사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가난을 물리친 역사적인 대통령으로 여생을 유복하게 보냈을까. 그러기에는 이미 넘지 못할 선(線)을 넘었던 것일까. 하기야 역사에 가정만큼 허무한 것도 없다.

이후 대통령들도 말년이 비참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백담사 유배로도 모자라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영어(囹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진보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속칭 ‘홍삼트리오’ 탓에 힘든 노년을 보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대군’과 함께 아예 집중 표적이 되었다. 결국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운명’을 마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영일대군’ 이상득은 물론 절친인 최시중과 오른팔 박영준 등의 감옥행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박근혜 대통령만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빚이 없었다. 말썽을 피울 가족도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그녀의 아킬레스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혼자만의 삶’이 지나쳤다. 청와대 관저에서 집무실로 출근하는 날이 일주일에 이틀밖에 안 된다는 소리가 들렸다. 해만 빠지면 그녀의 주변은 누구도 접근이 안 된다는 소리도 들렸다. 비서실장조차 일주일에 한 번 보기가 힘들었다고 실토했다.

사인(私人)이라면 그래도 상관없다. 대통령은 공인(公人)이다. 그러니 최순실 같은 국정농단 세력들이 똬리를 틀었다. 십상시(十常侍)들이 춤을 추었다. 김기춘·우병우 같은 머리 좋은 사람들도 끼어들었다. 일반 형사사건이라면 형량을 정함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탄핵심판은 그 중간이 없다. 인용이냐 아니면 기각 또는 각하냐 그것이 전부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온 국민이 촛불과 태극기로 둘로 갈라졌다.

바로 어저께 오전 11시. 헌법재판관들은 8 대 0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출근하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머리에는 ‘헤어 롤’ 2개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 이제 어떡할까. 승복을 하느냐, 불복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선다. 그것과 상관없이 “아이고, 저 불쌍한 것을 어쩌나” 하는 동네 할머니들의 곡(哭)소리는 들어주어야 한다. 대통령들의 말년 불행은 언제쯤 끝이 날까.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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