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명예혁명과 대통령직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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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1   |  발행일 2017-03-11 제9면   |  수정 2017-03-11
[기고] 명예혁명과 대통령직의 권위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2017년 3월10일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명예혁명이 이루어진 날로 기록될 것이다. 여덟 명의 헌법재판관은 전원 일치 결정으로 국회에 의하여 탄핵 소추된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 이 문장을 읽는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목소리에는 국민주권과 법치주의를 수호하려는 결의가 묻어났다.

헌법학자로서 언론에 부탁하고 싶다. 적어도 이번 주말만은 헌재 결정의 정치적 파급효과와 조기 대선에 미칠 영향에 관해서 섣부른 예측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광장의 시민에게도 청하고 싶다. 탄핵심판과정에서 쏟아졌던 과격한 언사를 거두고, 헌재가 내린 최종 결정의 이곳저곳을 곱씹듯이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특히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이라는 평을 들어온 세 재판관이 충정을 담아 쓴 두 개의 보충의견도 진지하게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이처럼 헌재의 결정문을 함께 읽는 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면, 그다음에 우리 대한국민 모두가 곧바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대통령직 그 자체의 무너진 권위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이는 어느 쪽 광장에 나온 시민이건 외면하거나 마다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직 그 자체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파면된 박 전 대통령에게 시민으로서의 예우를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 앞으로 그에게 닥칠 험난한 미래를 생각할 때 이 점은 아주 중요하다. 법 앞의 평등과 적법절차를 누릴 권리를 빈틈없이 보장하고, 대통령직을 4년여 수행한 점에 관해서도 합당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둘째, 대통령직 그 자체에 대한 희화화나 조롱은 모두가 빨리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계속하게 된 황교안 국무총리의 처신이 현실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행여 직을 던지고 조기대선에 출마하는 선택은 결코 하지 말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대통령직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파면된 대통령과 함께 정부를 이끌어 온 국무총리로서는 사실 과도정부의 수반으로서 대통령 권한대행 직을 수행하는 것도 분에 넘친다.

셋째, 각 당의 대선주자는 말과 행동을 삼가고 또 삼갔으면 좋겠다. 사실 박 대통령을 파면한 헌재의 결정문은 새로운 대통령에게 주는 경고장과도 같다. 이제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채 위법행위를 저지르거나 정치적 나태에 빠져 헌법수호의지를 잃어버린 대통령은 헌법절차에 따라 파면되는 선례가 생긴 것이 아닌가. 정치적 경쟁이 격화되면 말과 행동이 도를 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돌이켜 곧바로 삼가고 또 삼가는 출발점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직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다.

작년 10월 한 언론의 태블릿PC 보도 이후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우리 대한국민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계기를 이루는 위대한 헌법 드라마를 함께 써 왔다. 이 감격스러운 명예혁명의 주인공이자 최대의 수혜자는 과연 누구일까.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끝난 뒤 결정문 요지 전문을 다 읽고 점심을 거른 채 헌법 수업에 들어갔다. 강의 중에 1987년 6월29일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때의 청년은 헌법교수가 되었고, 2017년 3월10일의 명예혁명을 이루어낸 새로운 청년들이 그의 수업을 듣고 있다. 바로 이 청년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에 도래한 명예혁명의 주인공이자 최대의 수혜자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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