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李庄家 재조명과 우현서루 복원을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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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9   |  발행일 2017-03-09 제31면   |  수정 2017-03-09
[영남타워] 李庄家 재조명과 우현서루 복원을
백승운 사회부 특임기자 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이장가(李庄家). 대구지역 근·현대 역사의 중심에 섰던 경주이씨 가문을 일컫는다. 대를 이어 대구에 살았고 지금도 후손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장가는 대구의 부호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이동진이 시작이다. 그의 아들 이일우는 일제 강점기 우현서루(友弦書樓)를 운영하며 계몽운동에 나섰다. 이일우의 아들 상악, 조카 상정·상화·상백·상오 형제 또한 이 집안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하지만 역사는 민족시인 이상화만 주목하고 있다. 때문에 이상화 외의 이름은 다소 생소하다. 낯선 이름들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이력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모두가 시인 이상화만큼 큰 발자취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장가의 뿌리로 볼 수 있는 이동진은 우현서루를 실질적으로 설립한 인물이다. 우현서루는 1904년 이동진이 사재를 털어 세운 민족지사 양성 교육기관이면서 근대도서관이었다. 국내외에서 모은 책이 1만여 권에 달했다. 당시 이곳을 거쳐간 인물만 150여 명이나 됐다고 한다. 1905년 이동진이 세상을 뜬 이후에는 장남 이일우가 맡아 운영했다. 우현서루는 당연히 일제의 눈엣가시였다. 결국 1911년 강제 폐쇄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우현서루를 운영했던 이일우는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에 헌신하기도 했다. 국채보상운동은 김광제·서상돈이 중심이 된 광문회가 물꼬를 텄지만, 이일우가 이끌었던 광학회 또한 중심 축이었다. 광학회는 대구 단연상채회(斷煙償債會)가 전 국민의 동참을 촉구할 당시 큰 힘을 보탰다.

이일우의 조카 상정·상화·상백·상오 형제의 이력 또한 놀랍다. 4형제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일우 밑에서 자랐다. 이일우는 아버지 이상의 존재였고, 형제들은 자연스럽게 민족 성향의 기틀을 잡을 수 있었다. 첫째 이상정은 1923년 망명해 중국 국민정부의 중장까지 오른 독립운동가다. 임시정부 시절에는 대중(對中) 외교통으로 활약하며 광복군 창설에 기여했다. 민족시인 이상화는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다. 셋째 이상백은 국내 출신으로는 둘째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서울대 교수 재직 시절에는 사회학과를 처음 만들기도 했다. 수렵인으로 유명했던 넷째 이상오는 대한체육회 사격연맹회장을 지냈다.

근·현대사만 볼때 한 집안에서 이만큼 많은 인재가 나오기는 드물다. 독립운동부터 체육계·학계 등 분야도 다양하다. 모두가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역사의 중심에 선 인재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장가 출신 인물들은 대구의 자부심이자 자긍심이다. 하지만 역사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유난히 특정인만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다. 국채보상운동만 보더라도 김광제·서상돈에게만 집중돼 있다. 다른 한 축을 담당했던 이일우는 지금도 ‘들러리’ 정도로 여기고 있다. 이상정·상백·상오 형제는 시인 이상화에 가려 있다.

지금이라도 이장가 출신의 인물들을 깊이있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중구에 있는 이일우 고택을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 특히 고택에서는 지난해부터 수천 점의 문헌들이 발견돼 큰 관심을 받았다. 지역의 상·공 발달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자료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당시 현안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들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우현서루를 하루 빨리 복원해야 한다. 우현서루는 이장가 출신 인물들의 근간이 된 곳이면서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의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복원 후에는 이일우 고택에서 발견된 수천 점의 문헌을 전시하고 지금은 경북대에 있는 우현서루의 도서들을 옮겨와야 한다. 대구지역 독립운동의 산실로 키우고 그들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 교육장으로 가꾸어 갈 필요가 있다.

역사를 평가할때 특정인만 부각한다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대구도 하루빨리 새로운 인물, 새로운 역사, 새로운 현장을 찾고 조명할 필요가 있다. 역사의 스펙트럼은 넓을수록 가치가 있는 법이다.백승운 사회부 특임기자 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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