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새 봄, 다시 들메끈을 조이고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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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6   |  발행일 2017-03-06 제31면   |  수정 2017-03-06
[월요칼럼] 새 봄, 다시 들메끈을 조이고
원도혁 논설위원

다시 3월, 봄이 왔지만 시절이 하 수상하다. 대통령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가 초래한 상황이 너무 증폭돼 마치 시한폭탄과도 같다. 보수·진보로 양분돼 격렬하게 다툼 중인 나라가 걱정이다. 국민은 여전히 안타까움과 분노와 절망이 교차하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추동력을 상실한 사회, 심각하게 훼손된 대한민국 국격은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자긍심과 자존감을 잃어버린 우리 국민이 2017년 봄을 맞으면서 갈구하는 바람은 어떤 것일까.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라는 오래된 유행가 가사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어떤 선각자는 이런 명구를 남겼다. ‘어제의 비(雨)로 오늘 옷을 적시지 말고, 내일 비에 대비해 미리 우산을 펴지도 말라’라고. 어제는 어제일 뿐이니 더 이상 상처받지 말아야 하며,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문제는 제쳐두고, 오로지 오늘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이다.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실행은 잘 안된다. 수주 변영로 선생이 의기(義妓) 논개에 대해 읊었던 ‘종교보다 깊은 거룩한 분노’도 표출돼야 하고, ‘사랑보다 강한 불붙는 정열’도 발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외형적으로는 세계가 놀랄 정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아직 멀었다. 뿌리뽑아야 할 적폐(積弊)와 개선해야 할 과제가 각 분야에 많다. 여전히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사례들이 널려 있다. ‘영혼없는’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있다. 뿐만 아니다. ‘한 근의 아첨이 천 근의 성실함을 이기더라’는 어느 하위직 공무원의 실토는 공직계의 난맥상을 웅변으로 말해 준다. “단체장 시찰 때 미리 동선을 파악해 평소와 달리 부지런을 떨면서 아첨한 동료가 먼저 좋은 자리에 가더라”는 그의 울분은 근거가 있어 보였다. 어려운 일은 용역 주면 되고, 소신과 철학없이 눈치나 보고 있지나 않는지 되새겨야 한다. 교수사회도 마찬가지다. 만담이지만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이라는 난제에 대한 해답은 ‘조교에게 시킨다’로 통하는 조직이다. 교수사회의 갑질 관행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의문이다.

선망(羨望)의 대상이 된 교사들은 어떠한가. 초·중·고교에서는 제대로 훈육(訓育)이 이뤄지지 않고 적당히 방임(放任)한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가정에서는 물론 학교마저 엄하게 가르치지 않으니 인성 부족의 대책없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 체육계를 들여다보자. 객관적인 실력보다는 학연·지연 등으로 ‘줄세우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오죽하면 ‘문화·체육계 4대악’에 ‘줄세우기’가 들어가 있겠는가. 대구지역 문화예술기관의 대표 자리는 20년간 몇몇 인사들이 돌아가며 차지하는, 이른바 ‘문화마피아의 회전문’이라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의료계는 일부 의사들의 ‘과잉 진료’나 ‘엉터리 처방’ 등 불편한 진실이 여전히 존재한다. 필자도 보험사가 해주는 건강검진 때 ‘십이지장 종양 의심’ 진단에 겁을 먹고 며칠 뒤 다른 병원에서 위 내시경 검진을 해야 했는데 ‘이상 무’ 소견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한 경험이 있다. 부모나 가족을 병원 치료 중 잃어본 사람들이 외치는 “한국의 지방 병원에 환멸을 느낀다. 수도권 큰 병원으로 못 모신 게 한이 된다”는 절규를 지방 의료계는 간과해선 안된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혼란과 좌절 속에서도 국민들은 살기 좋고 정의로운 세상을 또 기대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반성과 개선노력 없이는 맞기 힘든 세상이다. 고치고 개선해야 할 게 어디 천 근의 성실함을 이기는 아첨, 교수들의 갑질, 환자에게 불신을 주는 의료행위뿐이겠는가. 작금의 이 극심한 혼란도 결국 우리가 자초한 것 아닌가. 나부터 다시 신발 들메끈을 조이고, 묵은 때와 독기를 빼야겠다. 우선 ‘독(讀) 만권서(萬券書)’하고, ‘행(行) 만리로(萬里路)’라도 해보자.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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