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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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6 07:49  |  수정 2017-03-06 07:49  |  발행일 2017-03-06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길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이 왔습니다. 이맘 때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면 나른함이 밀려오고 졸음이 쏟아집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눈을 피해, 직장인은 상사의 눈을 피해 무거워진 눈꺼풀을 살짝 내리고 잠을 즐기는 경우가 많죠. 이렇게 계절이 바뀌어 봄이 오면 충분히 잠을 자도 졸음이 밀려오는데 이를 춘곤증이라고 합니다. 춘곤증은 계절이 바뀌는 변화를 사람의 몸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생기는 일시적인 생리증상입니다. 춘곤증의 가장 큰 원인은 계절 변화에 따른 사람의 생체리듬 변화 때문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밤이 짧아지고 낮은 길어지면서 수면시간이 줄어들고 이에 우리 몸은 생체리듬에 변화를 주어 적응하고자 노력합니다. 이 기간 중 적응을 잘 하지 못하면 몸에서 피로증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춘곤증을 경험하게 됩니다. 유사한 예로는 해외여행 중 나타나는 시차 피로를 들 수 있습니다. 시차 역시 낮과 밤의 시간이 바뀐 여행지에서 우리 몸이 원래 살던 곳의 생체리듬을 여행지의 생체리듬으로 변화시켜 적응하는 과정 중에 나타나는 증상인데,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하면 수월하게 시차를 극복하지만 잘 적응하지 못하면 시차로 인한 피로감으로 평상 활동에 불편함을 겪게 됩니다.

이런 춘곤증, 시차 피로 등의 현상들은 하루 주기로 작동하는 사람 몸속의 매우 정교한 시계, 즉 생체시계 때문인데 이 생체시계는 최근 뇌연구 분야에서 상당히 중요한 토픽입니다. 2년 전 한국뇌연구원 원장 김경진 교수님은 단순히 먹고 자는 반복 일상 외에도 사람의 기분이나 정서 상태 역시 우리 몸의 생체시계에 의해 조절 받고 있음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였습니다. 즉 생체리듬이 우리의 하루를 좌지우지하고 있고, 아침에는 별 일 아니라고 느낀 일이 오후에는 크게 다가오는 감정의 변화조차 우리 맘속의 변덕이 아니라 우리 몸속 생체시계의 조화라는 것이죠. 또 생체리듬은 우리 기분이나 정서 상태까지 조절하므로 만약 우리 몸속 생체리듬이 깨지게 되면 시차 피로와 수면 장애는 물론 심각한 우울증까지도 올 수 있다고 합니다.

생체시계는 계절 변화에도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계절별로 밤낮의 길이가 달라지므로 수면시간이 바뀌고 이에 따라 생체리듬도 조절되면서 우리가 계절에 적응하게 됩니다. 춘곤증은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우리 몸의 생체리듬 조절이 잘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는 환절기 증상인 거죠. 아무튼 우린 봄철 나른함과 졸음을 피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사냥감을 노리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고양이처럼 봄철 오후 밀려드는 졸음은 조용하지만 치명적으로 다가옵니다.

문득 향기박사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서 읽은 ‘봄은 고양이로소이다’란 시가 떠오릅니다. 봄의 정서를 고양이의 특징과 대비하여 묘사한 이 시는 사물의 감각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천재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를 작시한 대구 출신 시인 이장희님은 안타깝게도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안타까운 결정의 시간을 조금만 뒤로 미뤘다면 이장희 시인의 생체리듬은 그 결정을 거둬드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오늘은 이 대구 출신 천재 시인 이장희님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중 밀려오는 봄철 나른한 졸음의 유혹을 고양이의 입술을 통해 묘사한 구절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잠시 시에 빠져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봄 햇살에 몸을 맡긴 채, 밀려드는 나른함을 잠깐의 점심 수면으로 달래보시면 어떨까요?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졸음이 떠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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