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혁의 남자의 취미] 노래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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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3   |  발행일 2017-03-03 제40면   |  수정 2017-03-03
노래로 스트레스를 한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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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혁씨가 집 근처 노래방에서 가족과 함께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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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폰과 이어폰을 연결하고 노래방 앱에 접속한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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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술에 취해 들어온 날이면 어김없이 전축의 볼륨을 높였다. 사글세 단칸방과 어울리지 않는 전축의 성능은 잠든 우리뿐만 아니라 다세대 주택의 모든 이들을 깨우고도 남았다. 유치원은 꿈도 못꾸던 그 시절, 나는 동요 대신에 배호와 나훈아의 노래를 들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高 2년 무렵 ‘신문물’ 노래방의 등장
이후 청춘의 많은 시간 그곳서 살다시피

반평생 노래방과 더불어 한 추종자의 삶
최근엔 스마트폰 노래방 ‘앱’ 신통방통
불경기가 되살린 ‘동전노래방’도 재미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놀이공간이기도



외할머니 집에도 오디오가 있었다. 사촌형과 누나들이 1년 넘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렵게 장만한 재산이었다. 할머니 몰래 사들인 레코드판이 100여 장쯤 되었으니, 그보다 더한 놀이터가 없었다. 친구들이 ‘노을이 머물다간 들판에~’라고 두 손을 지그시 모으고 노래 부를 때, 나는 짝다리를 짚고 서서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을 불렀다.

그리고 마침내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전국적으로 노래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가본 노래방에서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깨닫고는 수능이 끝나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수능 1세대인 94학번은 8월과 11월에 두 번 수능을 치렀다. 운이 좋았던 필자는 1차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기에 8월 이후로는 노래방에서 살게 되었다.

남자의 취미, 오늘의 주제는 바로 노래방이다. 선견지명이 있는 독자라면 지난 회의 음주(와인) 이후 가무를 예상하셨을지 모른다. 일종의 패키지인 셈이다.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우리 국민 대부분은 노래방에 대한 추억거리 한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아픈 기억이든 간에 말이다.

한이 많아서, 또 흥이 많아서 우리 민족은 노래를 벗 삼아 살아왔다. 막걸리 한잔이면 논두렁 밭두렁에서 타령 한 자락쯤 절로 흘러 나왔고, 부둣가 선술집에서는 젓가락 장단에 맞춰 한 많은 색시의 노래가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조상들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우리는 애어른 할 것 없이 노래를 즐기는 사람들이다(물론 예외는 어디든 존재하는 법이다).

필자 또한 태생적 요소에 성장기 환경적 요소가 더해져 노래방에 이끌렸다. 노래방에 쏟아부은 시간과 돈이면 이미 가수가 되고도 남았어야 할 정도다. 대학 신입생 시절, 친구들은 당구장에 가거나 한창 유행이던 PC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그때, 나는 유유히 홀로 노래방으로 향했다.

대낮에 노래방에 가면 5천원으로 서너 시간쯤 즐길 수 있었으니 그만큼 경제적인 놀이도 없던 셈이다. 실연의 아픔이라도 겪은 시기에는 노래방 아르바이트생과 출퇴근을 같이할 정도였다. 아픔의 시기가 유달리 잦았던 것도 한몫했다. 종종 친해진 아르바이트생 대신 카운터를 지킨 날도 있었다. 지쳐 목이 쉴 때까지 공짜로 노래를 부르는 운 좋은 나날이었다.

그 시절에 오디션 프로가 있었더라면 분명 지역 예선 정도는 쉽게 통과하지 않았을까, 라는 망상을 요즘도 하고 산다. 물론 대학가요제가 있긴 했지만 필자는 노래패가 아닌 연극반에 적을 두었기에 선배들의 눈치가 보였다.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

노래방에 관한 무용담을 적고자 시작한 글은 아니므로 이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자. 반평생을 노래방과 더불어 살아 온, 노래방의 산 역사이자 여전한 추종자로서 눈이 번쩍 뜨이는 노래방 관련 아이템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스마트 폰의 노래방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동전 노래방이다.

먼저 노래방 앱부터 살펴보자. 단순하게 액정에 노래 가사가 뜨는 그런 태곳적 이야기가 아니다. 스마트 폰에 노래방 앱과 마이크로폰 앱을 설치한 뒤 마이크로폰과 이어폰을 연결하면 완벽한 자기만의 노래방을 만들 수 있다. 스마트 폰 전용 마이크 구입에 2천원만 투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노래가 가능하다. 신이 내린 선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카 오디오와도 연계가 되므로, 장거리 가족 여행 때 지겨워하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는 효자 노릇도 톡톡히 해낸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당사자는 즐겁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은 슬프도록 우습다가 괴로워진다는 점이다. 가급적 인적이 드문 외진 곳이나 고립된 공간에서 할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다음은 동전 노래방이다. 기억하겠지만 초창기 노래방은 코인제였다. 20년 전에도 한곡에 500원이었으니 적지 않은 돈을 노래방에 가져다 바친 셈이다. 그러다가 시간제로 바뀌면서 숨통이 트였다. 단골들에게는 무한 리필이라는 혜택이 주어졌으니 말이다. 물론 오락실 한 구석이나 무궁화호 열차 칸에서 동전노래방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깡통노래방이라는 다소 불명예스러운 애칭을 얻은 채로.

계속되는 불경기는 동전 노래방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일단 매우 경제적이다. 1천원이면 두곡 내지 세곡쯤 부를 수 있으며(노래방에 따라 다르지만 1천원에 8~10분의 시간이 제공된다), 음향과 조명 또한 격을 달리 한다. 밤 10시 이전에는 청소년들도 이용 가능한 개방적이고 밝은 분위기다. 외식을 하고 난 이른 저녁이면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놀이 공간이고, 회식 후에 괜히 직원들 괴롭힐 것 없이 혼자 가서 실컷 불러도 5천원이면 충분하다.

그런 경험들 있을 것이다. 광란의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잠깐 들렀다고 믿고 싶은) 술 마시는 노래방 카드 전표를 보고 화들짝 놀라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던 경험. 후회는 항상 반복되기 마련이다. 이제 주점이나 가라오케 같은 음지의 문화에서 벗어나 노래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 가지고 나만의 콘서트홀을 만들어 보자.

반짝이는 조명 아래, 스탠드 마이크를 거머쥐고 멋들어지게 노래 부르는 당신의 모습은 자신감의 최고 절정이며, 매사 긍정적이던 본연의 모습이다. 슬프고 우울한 날이면 또 슬픈 노래를 목 놓아 불러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자. 내 안에 쌓인 분노와 서글픈 감정이 봄눈처럼 녹아내릴 것이다.

얼마 전 아이들과 ‘트롤’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늘 노래하고 춤추며 사는 트롤들에게서 행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한과 설움도 많지만 우리는 본성이 흥겨운 민족 아니었던가? 직장과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 육아와 취업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노래에 실어 한방에 날려버리자. 타인의 시선 따위 개의치 말고 지금 당장, 마이크를 잡아보는 거다.

칼럼니스트 junghyu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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