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누가 보수를 망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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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1   |  발행일 2017-03-01 제31면   |  수정 2017-03-01
[영남시론] 누가 보수를 망치고 있나
박상병 정치평론가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말할 때 보수와 진보를 논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보수다운 보수, 진보다운 진보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보수’를 빙자한 수구 기득권세력이 광범위하게 발호하고 있으며, ‘진보’를 가장한 무능 부패세력이 곳곳에서 핏대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가치의 차별성과 선명함을 내걸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직 내 편과 네 편의 편 가르기와 반대를 위한 반대 그리고 막무가내식 궤변과 언동으로 국민의 가슴에 이데올로기적 피멍을 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유난히 ‘보수’라는 말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보수세력이 궤멸되고 있다는 탄식도 나오고 있으며, 서울 대한문 앞에서 보수세력이 총집결하자는 구호도 나오고 있다. 비록 정치적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보수의 이미지를 스스로 망치는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말 그대로의 건강한 보수세력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본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올바른 의미에서의 보수가 맞는가. 이 땅의 보수세력은 박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서울 대한문 앞에서 막말 수준의 언동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함께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인가. 그리고 헌법재판소 재판정에서 저급한 언행을 일삼는 일부의 대통령 대리인단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보수란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건강한 보수라면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무력하게 만든 박근혜 대통령에 더 분노하고 탄핵에 앞장서는 것이 옳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와 재판관들을 농락하는 듯한 대통령 대리인들의 언행에는 더 크게 분노해야 한다. 헌법가치를 사수하는 것이 보수의 마지막 심장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보수를 가장한 일단의 무리들을 일벌백계로 응징하고 그들로부터 건강한 보수를 지켜내는 것이 옳은 일이다.

오죽했으면 바른정당의 김무성 의원까지 나섰을까 싶다. 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과 이를 옹호하는 정치세력은 극우 편향적이고 수구꼴통으로 보수적 가치의 근본을 훼손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일부 대리인들의 언동에 대해 ‘집단 광기의 발동’이라고 밝히면서 이들의 ‘가짜 보수’와 바른정당을 구분해 달라고 호소했다. 다시 말하면 바른정당이 추구하는 보수의 가치는 집단광기의 수구꼴통이 아니라고 강변한 셈이다. 자칫 보수가 대한문 앞에서의 태극기와 성조기로, 그리고 헌법재판소에서의 일부 대리인단의 막말급 언동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닌지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민은 똑똑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보수를 자처하는 그들의 인식 수준 그리고 준엄해야 할 헌법재판소와 재판관까지 농락한 그들이 누구인지 그 실체를 국민은 입술을 깨물고 목도했을 것이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그들의 언동은 우리 헌정사에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70여년 전 광복 직후의 혼란 상황에서 보여준 극우집단의 ‘백색테러’를 연상케 한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과연 그들을 ‘보수’와 ‘헌법가치’라는 이름으로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건강한 보수라면 지금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진정한 보수의 가치는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것이요, 그 적들에 대해서는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헌법가치를 훼손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욕되게 하고, 태극기를 들고 태극기의 가치를 짓밟는 무리들과는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이 혼란에서 합리적이고 건강한 보수를 견인하고 그 적들을 응징하며 확실하게 차별화할 수 있는 이념의 터전을 일궈야 한다. 이것이 보수의 위기에서도 보수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길거리로 나가 우리 젊은이들에게 ‘지금 한국의 보수세력을 어떻게 보느냐’고 한번 물어보시라.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의 가치는 어디 가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궤변과 망동을 증언하는 말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보수세력이라면 이대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수구꼴통’과 같이 갈 수는 없다. 이런 결단도 없이 이대로 이번 대선에서, 또 내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보수를 말할 것인가. 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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