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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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1   |  발행일 2017-03-01 제30면   |  수정 2017-03-01
20170301
정혜진 (국선전담변호사)

고졸 출신에 전관도 아닌
‘공익변호사’ 박준영씨의
위로와 용기 주는 한마디
‘인격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
하다보니 이렇게 된 겁니다’


어느 변호사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이라고 하면 아시는 분이 많겠지요. 재심 사건으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입니다. 지난해 법조 비리가 연달아 터지면서 법조계가 욕을 참 많이 먹었는데요. 이분 덕분에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지요. ‘억울한 사람 발 벗고 도와주다 보니 나 파산했다, 그런데 억울한 사람 계속 도와줘야 하니 나 좀 줘.’ 그런 노골적인 스토리펀딩에 사흘 만에 목표금액 1억원이 모이는 신기록이 세워지고, 석 달 동안 5억6천797만8천원이 모였습니다. 전관 출신 변호사들의 상상 초월 비리에 기가 막혔던 시민들이 정의를 찾아 고군분투하는 ‘진짜배기 변호사’ 이야기에 감동한 것이지요.

그분의 훌륭함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니 여기서 제가 더 보탤 말은 없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그분이 영화 ‘재심’ 수원 시사회에 나와서 한 말 때문입니다. 그분이 맡았던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잖아요. 게다가 수원에서 개업해 최근 서울로 옮겨가기까지 11년을 수원에서 변호사로 활동해 그분의 수원 지인들이 많이 왔더랬지요. 사회자가 그분에게 소감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수원에서 형편없이 살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저의 모습을 직접 보신 분들이 많이 오셔서 참 민망합니다.”

그 민망함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사명감이나 대의명분 없이 돈을 벌기 위해 국선 사건을 하던 때를 말했겠지요. 시골에서 종고를 간신히 졸업하고 대학도 안 나온 그분은 사법연수원을 밑바닥 성적으로 수료하고 서울에서는 받아 주는 데가 없어 수원까지 내려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니 그때만 해도 변호사들 형편이 아직은 좋았던 때인데, 학벌도 안 되고, 성적도 안 되고, 인맥도 안 되다 보니 국선 사건이라도 해야 했답니다. 국선 사건 한 건에 20만~30만원 정도 받는데, 하도 많이 해서 돈이 좀 되었답니다. 사선(私選) 수임이 어려워, 할 수 없이 국선 변호를 했던 변호사, 국선을 많이 해서 사선만큼의 수입을 올리자는 생각으로 살던 변호사가 어느 날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였지요. 범인으로 지목된 가출청소년들을 도와주던 청소년쉼터 선생님들이 자꾸 찾아와서 ‘솔직히 귀찮았다’고 합니다. 국선 사건이 미어터지는데 그 사건에 집중하면 다른 사건을 못하니까요. 그런데 쉼터 선생님들이 방대한 수사기록을 일일이 정리해서 한눈에 보게 해 주니 그제야 사건의 문제점이 보였습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사건을 파고들었답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변호사 공익대상을 받고 노근리 평화상 인권상을 받은 변호사가 돈 벌려고 국선 했고, 유명해지고 싶어 ‘될 만한 사건’을 놓치지 않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지금의 박 변호사 같은 사람을 ‘인권 변호사’라고 부르곤 했지요. 요즘에는 ‘공익 변호사’라는 말을 많이 쓰더군요. 인권이든 공익이든 그런 일에 헌신하는 변호사라면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인권 변호사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대표적이지요. 처음부터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던 그런 분을 보면 누구나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납니다. 요즘 공익 변호사들 대부분도 그렇습니다. 그런 일을 하고 싶어 변호사가 되고 남들 부러워하는 성적인데도 처음부터 박봉을 면치 못하는 그런 일을 합니다.

박 변호사는 그런 고매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책 ‘우리들의 변호사’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겁니다.” 저는 이 말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인격이라는 것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해 가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처음부터 훌륭하지 않았던 인격이라도 ‘하다 보면’ 좋은 쪽으로 갈 수 있다는 거지요. 박 변호사가 민망했던 시절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속물인 우리도, 그 누구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인격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다 보면’ 말입니다. 정혜진 (국선전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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