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렬의 미·인·만·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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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1   |  발행일 2017-03-01 제30면   |  수정 2017-03-01
[김옥렬의 미·인·만·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作 이미지의 배반
[김옥렬의 미·인·만·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현대미술연구소 소장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 파이프 그림이다. 그런데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글을 또박또박 적어 놓았다. 글이 그림을 부정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유명한 회화작품이다. 그는 왜 파이프를 그려 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할까. 파이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지의 배반이다. 화가는 이 그림에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미지의 배반’은 상투적으로 보고 느끼고 말하는 것에 일침을 가한다.

흔히 그림을 보면서 ‘그것은 꽃이다. 그것은 송아지다’라고 말하는 언어의 관습으로 본다면, 이 그림은 파이프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림과 문장 간에 생기는 모순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것은 글씨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글씨의 결핍을 채우고 나아가 글씨를 연장한다. 이 그림과 문장에는 파이프 자체가 아니라 그려진 파이프라는 이중의 역설을 담고 있다. 이 역설의 의미는 눈에 보이는 것, 무심코 보아 넘긴 대상을 다시 혹은 새롭게 보는 것에 있다.

새롭게 본다는 것,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하는 언표, 이 문장은 부정을 통해 긍정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그림을 대하는 습관은 대상과의 유사성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은 이미지와 텍스트의 차이 속에서 상투성과 마주보게 한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 대한 평론서를 집필한 미셸 푸코는 “이 그림은 칼리그람(글+그림)이다. 보여주는 것과 말하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 서로를 포개어 놓았다”고 했다. 파이프로 보여지는 그림을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언어를 부언함으로써 부정을 통해 모호한 힘을 발한다. 이러한 말과 이미지의 놀이는 비장소로 공간을 해체한다.

파이프를 그려 놓고 파이프가 아니라고 한 이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비슷한 것으로의 한없고 가역적인 관계를 순환시킨다. 그리고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표면 위를 달리는 모의를 분리해낸다. ‘이미지의 배반’에서 글과 그림의 분리는 이렇듯 상상의 열린 망으로 향한다. 화가들은 이 상상의 열린 망을 통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세상을 그만의 형과 색과 질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나의 눈으로 본 세상 속에서 그만의 형과 색과 질감으로 그린 그림을 본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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