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세종시를 정상화하자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2-28   |  발행일 2017-02-28 제31면   |  수정 2017-02-28
[CEO 칼럼] 세종시를 정상화하자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반만년의 긴 역사를 거치면서 이 땅에서는 여러 나라가 번영과 쇠퇴를 반복해왔다. 나라가 새로 세워지면 나라의 중심이 되는 수도의 위치도 옮겨지기 마련이었다. 더 오래된 과거는 접어두고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삼국시대부터 더듬어보자. 압록강 변의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다시 개성을 거쳐 조선 초기에는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 후 정조에 의해 수원이 검토되더니 드디어 최근에는 행정중심 복합도시라는 형태로 세종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리적으로 우리의 수도는 만주에서 시작하여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꾸만 반도의 한쪽 모서리로 치우쳐져 왔다는 것이다.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국력이 쇠약해지니 할 수 없이 밀려 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지도자들이 대외지향적인 자세를 유지하기보다는 소극적 정책을 펼침에 따라 점차 위축되어 간 것인지.

상대국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오히려 수도를 국경 근처로 옮겨 국력을 모은 다른 나라의 경우를 생각하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현대에도 카자흐스탄은 증가하는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알마티를 떠나 북쪽 황량한 벌판에 아스타나라는 새 수도를 건설한 바 있다.

세종시는 역사적 진취성의 관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기능 면에서 문제가 많다. 세종시로 수도를 옮기면 지역 균형 발전이 촉진될 수 있다는 논리는 포장에 불과하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의 전형이요, 서울이라는 도시에 600년 이상 강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기득권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개혁군주 정조가 노론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의 묘소를 핑계로 수원에 화성을 건설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헌법소원에서 패해 수도 기능의 이관을 포기하고 행정부만 옮겨놓은 탓에 국가운영의 효율이라는 면에서 최악의 상황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리 행정부의 기능이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하나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책의 결정과 구체적 집행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데 비해 대통령실, 국회, 법원 등의 유관기관은 모두 서울에 있다. 경제·문화 기능 역시 마찬가지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중앙부처 간부 공무원들은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느라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서로의 스케줄에 따라 이동하다 보니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책 현안을 차분하게 논의할 시간이 부족하다. 기관 간 협의가 필요한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아무리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문제는 얼굴을 맞대고 논의하여 결정해야 한다. 비대면 행정의 폐해는 최근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가 증명해 주고 있다. 국정이 지연되고 표류할 수밖에 없고 행정의 활력이나 창의성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나라의 발전을 생각하면 우리의 통일 수도는 서울보다는 북쪽 어딘가에 위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훗날의 이야기요, 지금은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국가운영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세종시로 수도 기능을 모으자. 개헌이 논의되면 통일 전까지는 세종시를 수도로 한다고 아예 부칙에 명시하자.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기능을 세종시로 모아 국력을 결집해야만 통일을 앞당기고 ‘수도 세종시’의 기간을 오히려 단축할 수 있는 역설도 가능하다. 제대로 가꾸어 놓으면 통일 후 세종시는 연구, 교육과 문화의 공간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세종시 수도의 발상은 역사적 관점이나 현실적인 고려에서도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러나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가 버렸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실수는 안타깝다. 그러나 단추가 잘못 끼워진 줄 알면서도 그 옷을 그냥 입고 있다면 행동거지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