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사랑일까, 미련일까, 착각일까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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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8   |  발행일 2017-02-28 제30면   |  수정 2017-02-28
20170228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탄핵심판 결과와 상관없이
극도의 대립·반목 2R 예고
더이상 분열된다면 치명타
착각했다는 마음 거두도록
희망 담긴 국가 청사진 절실


뭔가 지금보다 더 사달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하루하루 커지고 있다. 마치 시시각각 다가오는 초대형 태풍을 속절없이 마주하고 있는 모양새다. 일정상 종착역에 거의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 찝찝한 느낌은 뭘까. 끝이 아니라 또다른 늪의 시작임을 경험칙으로 알아서인가. 1라운드보다 더 강력한 분위기의 2라운드가 벌써 아른거린다. 탄핵심판 결과도 중요하고 궁금하지만, 그 이후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상황이 심히 우려된다.

본시 우리 국민 대다수는 선량하고 착했다. 정권에 이리 치이고 정치에 저리 농락당하는 풍파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조국을 사랑했고, 웬만하면 나라와 공동체가 우선이었다. 크게 마음에 안들더라도 공권력에 대한 예의도 지킬 줄 알았다. 통치나 정치가 좀 이상하다 싶을 때도 많았지만, 특유의 인내와 미련을 갖고 참아왔다. 아니, 버텨왔다. 물론 그들이 립서비스 말고 행동으로 국민을 위했던 기억도 사실상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삶이 팍팍해질수록 ‘이젠 달라지겠지’ ‘언젠가는 잘하겠지’ 등과 같은 어리석고 순진한 믿음은 분명 착각이었다. 오랜 시간 그래왔고 현재도 여전하다는 사실이 분하고 억울하지만, 앞으로도 달라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더 절망적이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다는데…. ‘이게 나라냐’ 시즌2가 된다면 정말 너무 싫다.

얼마 전 부산에서는 고아로 성장한 30대가 춥고 배고파서 경로당에 몰래 들어가 밥과 김치를 훔쳐먹고 설거지하기를 반복하다 경찰에 붙잡힌 적이 있다. 안타깝고 딱한 사연을 접한 담당경찰은 그에게 3만원을 쥐어주며 “힘내라”고 격려했고, 한 달 뒤 그는 “땀 흘려 번 돈”이라며 3만원을 들고 다시 경찰서를 찾은 적이 있었다.

생계형 범죄자가 ‘한국판 장발장’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는 소식에 네티즌들은 열광했다. ‘슬프고 감동적이다’ ‘아직까지 세상은 살만하다’ 등의 댓글을 달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국민의 삶의 질에 눈꼽만큼도 도움이 안되는 ‘그들만의 리그’에 몸서리치면서 따뜻한 이야기에 목말라하고 있음을 제대로 보여줬다.

박 터지게 싸워서 국민에게 득이 된다면 감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니다. 역사가 증명한다. 전리품은 항상 이긴 자의 몫이었고 피해와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다. 그들은 매번 앞으로 잘하겠다고 사기에 가까운 사탕발림을 하지만, 이젠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나온 길’처럼 명확한 판단 근거는 없다. 적어도 지도자와 정치인은 과거와 현재로 평가해야 더 이상 속지 않는다.

‘기각’이나 ‘인용’ 등 조만간 현실화될 사안들을 가정한 갑론을박이 과열되면서 국론도 정서도 극도의 분열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인화성 강한 가계부채가 역대 최고치인 1천300조원을 웃도는 등 정국이 안정적이어도 갑갑한 상황의 연속인데 도대체 뭘하자는 건지 이해도, 납득도, 용서도 안된다.

한쪽에서는 굶주림에 시달리던 20대 실직자가 1천원짜리 막걸리를 훔치고 또 한쪽에서는 신학기를 앞두고 117만원짜리 책가방과 200만원짜리 아동외투가 잘 팔린다는 뉴스가 폐부를 찌르듯 아프게 와닿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슬픈 단면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 간극을 의도적으로라도 좁히고 메워주라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책무 아닌가. 제발 닭 쳐다보듯 개인능력의 탓으로만 전가하지 말자.

무단횡단 한번만 해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장삼이사들은, 사정이 딱하기는 하지만 김치를, 막걸리를 훔쳐먹었다면 그래도 죄는 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특검에 불려나올 정도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인간들은 그냥 죄가 아니라고 우긴다. 원래 법을 무시하는 족속들이 궁지에 몰리면 법을 찾는다던데 딱 그 짝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이따위 행정을 하고 단체장이 저따위 전횡을 일삼았다면 난리가 나도 골백번은 더 났을 것이다. 권한과 책임은 국민이 부여한 것인데, 책임을 내팽개치고 권한만 갖다바친 것으로 착각했다면, 그건 범죄다.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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