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감정’ 조울증, 자살위험 일반인의 15배

  •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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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8 07:59  |  수정 2017-02-28 07:59  |  발행일 2017-02-28 제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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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력 있으면 발병위험 10배 높아
한때 우울증 겪은 사람도 고위험군
심하면 망상 사실로 믿고 자해 위험

항우울제만 복용 땐 조증으로 급변
전문의 처방없는 약물복용 삼가야


요즘 자신이 조울증이 아니냐고 물어오는 환자가 많아졌다. 조울증은 기분이 매우 들뜬 조증과 기분이 심하게 처지는 우울증의 양 극단을 오간다고 해서 양극성장애라고도 한다. 많은 사람이 하루 중에 기분이 수시로 변하는 것을 조울증의 주된 증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조울증은 단순히 기분의 변덕이 심한 것과는 다르다. 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을 다음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관공서에서 근무하는 남성 K씨(44). 원래 말이 적고 내성적이며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성격이다. 20대 후반에 우울증이 있었으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를 해 호전된 후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지내왔다.

그런데 2주 전부터 갑자기 말수가 많아져서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떠들기 시작했고, 낯선 사람들의 대화에 불쑥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창업 아이템이 떠올랐다며 밤새도록 부산하게 자료를 정리하느라 거의 매일 2~3시간만 잠을 잔다. 그런데도 낮에 별로 피로하지 않고, 본인 말로는 에너지가 넘친다고 했다.

아이디어만 떠올랐을 뿐 아직 회사를 창업한 것도 아닌데 CEO라는 직함이 새겨진 명함을 인쇄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전 세계적인 부자들이 앞다투어 투자하려 한다는 망상을 사실처럼 얘기한다. 자신이 이미 너무 유명해져서 청와대에서도 알고 있다고 했다. 사업을 위해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깜짝 놀란 부인이 K씨를 데리고 병원을 방문했다.

앞에서 볼 수 있듯이 조울증은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매우 들뜨는 조증 삽화(에피소드)가 가장 특징적이다. 조증 삽화는 비정상적으로 들뜨거나 의기양양하거나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가 일주일 이상 거의 매일, 하루 종일 지속될 때를 말한다. 이 밖에 자신감이 넘치고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 수면에 대한 욕구 감소,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거나 말을 끊기 어려울 정도로 계속 말을 함, 머릿속의 생각이 질주하듯 빠르게 꼬리를 물고 떠오름, 주의산만함, 사회적 활동이나 성(性)적 활동의 증가 또는 목적이나 목표 없이 부산하게 움직임, 과소비, 무분별한 성행위, 어리석은 투자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이러한 조증 삽화가 한 차례 이상 존재하는 경우 조울증으로 진단내릴 수 있다. 조증 삽화를 경험하는 대다수의 사람은 평생 여러 차례의 주요 우울 삽화(심한 우울증 삽화)를 경험하게 된다. 조울증은 한 개인의 사회적, 직업적 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

조울증의 평생 유병률은 약 1%로 100명 중 1명 정도가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된다. 병이 시작되는 시기는 평균 18세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어떤 연령에서든 발병 가능하며 60~70대에 처음 시작되기도 한다. 발생에는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가족 중에 이 병을 앓은 사람이 있으면 발생 위험이 평균 10배 정도 높아진다.

조울증의 우울증 시기에는 자살위험이 매우 높아서 일반 인구의 15배에 이른다. 조증 삽화는 며칠 혹은 몇 주에 걸쳐 빠르게 발생하는데, 보통 3개월 이상 지속되고, 한 번 조증 삽화를 경험한 사람의 90% 이상은 반복적으로 기분 삽화가 재발한다. 삽화 사이의 간격은 평균 6~9개월이나 병이 진행될수록 짧아진다.

급성으로 증상이 심해 자해 등의 위험이 있을 때, 판단력의 심한 저하로 개인의 건강과 안전에 위험이 있을 때, 원인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할 때는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 치료는 정신치료와 더불어 증상의 빠른 안정을 위한 약물치료가 중요하다. 기분안정제와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을 사용한다. 약물로도 치료가 잘되지 않고, 심한 조증으로 자해나 타해의 위험이 크면 전기경련요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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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울증의 시기에 항우울제만 단독으로 투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울증 환자에게 항우울제를 단독으로 투여하면 우울증이 조증으로 변환되면서 심각한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우울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서 조울증의 가능성이 의심되면, 항우울제를 투여하기 전에 기분안정제 또는 비정형 항정신병약물을 우선적으로 투여해 조증으로의 전환을 예방해야 한다.

단순 우울증인지, 조울증에서의 우울증인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면담이 필수적이다. 특히 젊은 나이에 시작된 우울증 환자의 경우 조울증 전환 및 자살시도의 위험이 더욱 높으므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처방없이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조울증의 조증 삽화는 마치 화재와도 같아서 순식간에 훨훨 타오른다. 일찍 발견하면 물 한 바가지로 끌 수 있지만, 뒤늦게 발견하면 소방차가 여러 대 와도 진압이 어렵다. 사람들이 조증의 증상에 대해 잘 알고, 최대한 일찍 발견해 치료하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임호기자 tiger35@yeongnam.com

▨도움말=김병수 칠곡경북대병원 정신건강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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