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영재 리정열군 탈북 스토리

  • 입력 2017-02-28 07:38  |  수정 2017-02-28 07:38  |  발행일 2017-02-28 제10면
200달러 쥐여주며 “우리 걱정말고 가라”
보복 우려에도 탈북 지원 ‘애틋한 父情’

작년 9월 홍콩을 거쳐 한국에 간 탈북 수학영재가 과감하게 탈북할 수 있었던 데는 아버지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소식통을 인용해 27일 보도했다.

SCMP는 201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과 2015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해 바깥 세상을 경험한 리정열군은 홍콩 대회에 참가하기 훨씬 전 탈북을 계획했으며 북한 남부 지역 중학교 수학 교사인 부친에게 탈북 의사를 알렸고, 부친이 이를 지원했다고 전했다.

리군 부친은 탈북자 가족에 대한 보복 우려에도 리군에게 200달러(약 22만6천원)를 구해 쥐여주면서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탈북을 결심했던 리군으로선 작년에 고3이어서 홍콩에서의 제57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회가 외국에서 탈북을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애틋한 부정(父情)을 뒤로 한 채 홍콩에 온 리군은 작년 7월17일 북한 측 감시망을 뚫고 숙소인 까우룽반도 홍콩과학기술대 기숙사를 혼자 빠져나온 뒤 한국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택시를 타고 란타우섬에 있는 홍콩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한 리군은 한국 항공사 직원에게 접근해 한국에 가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항공사 직원이 주홍콩 한국총영사관에 전화했고, 영사관 측은 리군에게 스스로 택시를 타라고만 일렀다.

이후 리군은 공항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홍콩섬 애드미럴티의 극동파이낸스센터로 가 센터 내 5층에 있는 한국총영사관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한 소식통은 “리군이 영사관에 걸어 들어왔을 때 영사관 직원들이 그의 용기에 놀랐다"며 “리군이 첫 달에는 좀처럼 얘기를 안 했지만, 점차 영사관 직원들과 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영사관 직원들이 두 달 동안 리군을 24시간 지원했지만, 리군 부모의 안전과 리군의 감정을 자극할 걸 우려해 가족 관련 질문은 피했다고 덧붙였다. 리군은 두 달간 영사관 내 작은 방에 머물면서 컴퓨터 게임을 즐겼고 러닝머신을 이용해 체력을 단련했다.

리군은 작년 9월24일 일본을 거쳐 한국에 입국한 뒤 표준말과 한국 문화, 사회, 국제 관계에 대해 공부했고 다음 달 대학 학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리군이 망명 당시 한국에서 수학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으며 최근 국내 수학 경시대회에서 우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SCMP는 리군이 입학하는 대학이나 전공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리군은 1997년 7월 홍콩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19년 만에 처음으로 홍콩에 진입한 탈북자다. 홍콩에서 탈북자가 한국행을 허가받은 것도 주권 반환 이후 처음이다.

주권반환전인 1993∼1997년 6월 홍콩을 거쳐 한국으로 간 탈북자는 1996년 12월 망명한 북한 주민 김경호씨 일가족 17명을 포함해 4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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