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속으로 !] 환갑 앞둔 초등동창들, 노예노동 정신지체 친구 구하다

  •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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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8 07:27  |  수정 2017-02-28 07:42  |  발행일 2017-02-28 제9면
20170228
27일 포항 구룡포에서 만난 김모씨. 친구들의 도움으로 병원 치료를 받아 손등이 호전됐다고 말했다.

축사에서 무임노동·학대
목욕탕에선 매맞으며 일
사실 안 친구들이 데려와
자주 모이는 사무실 옆에
새로운 보금자리 마련해줘


[포항] 지적장애로 인해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온 친구를 돕기 위해 환갑을 바라보는 초등학교 동창들이 나선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1960년 포항시 남구 구룡포에서 2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난 김모씨. 선천적으로 정신지체 장애를 안고 태어난 김씨는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친구들의 보호와 도움을 받아왔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김씨는 고향 구룡포에서 목욕탕 등 이곳저곳을 돌며 허드렛일과 장애수당 등 정부보조금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비록 지적장애를 앓았지만 친구들의 우정 덕분에 늘 밝게 지냈다.

그러던 김씨가 2011년 갑자기 사라졌다. 온전치 못한 김씨가 사라지자 친구들의 걱정은 태산이었다. ‘혹시 나쁜 사람들한테 끌려가지 않았을까. 혹시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까’ 하며 친구들의 불안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동창 친구들이 수소문 끝에 김씨를 찾은 것은 1년 만인 2012년. 고향 동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구룡포읍 성동리에서 돼지축사를 운영하는 A씨 집에서 축사를 돌보는 일을 했던 것이다.

동창들에 따르면 발견 당시 김씨의 장화는 돼지똥으로 뒤덮였고, 남루한 옷을 입고 있는 등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가 생활한 곳은 축사 한쪽의 낡아빠진 컨테이너였다. 특히 온몸은 멍투성이었다. 김씨는 “주인이 돼지가 죽으면 몽둥이로 때렸다”고 말했다. 1년이 넘도록 축사에서 일했지만 김씨의 수중에는 한 푼도 없었다. 장애인 학대와 임금 갈취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친구의 도움으로 축사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김씨는 친인척에게 맡겨져 행복한 삶을 사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추석날(9월15일) 친구들 앞에 나타난 김씨는 몇 년 전 축산농가에서 구출될 당시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손은 악성습진으로 갈라져 흉측했다. 친구들의 끈질긴 추궁에 입을 연 김씨는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장애수당은 구경도 못했고, 포항 시내의 한 목욕탕에서 생활하며 매질을 당하며 살아왔다는 것. 친구들은 몇 년 전 축사농가 감금 때를 떠올리며 학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김씨를 지켜봐 온 친구 이모씨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장애인을 온갖 유혹으로 데려가서 사실상 감금상태에서 정부보조금을 빼돌리고, 매질과 임금 갈취를 자행한 사건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더 이상 믿고 맡길 곳이 없어 친구들이 돌봐주고 있다”고 사연을 알려 왔다.

현재 김씨는 친구들이 자주 모이는 사무실 옆에 마련한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27일 만난 김씨는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준 친구들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포항남부경찰서는 돼지축사 대표와 김씨의 친인척 등 2명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사진=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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