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세금 혹은 상납금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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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7   |  발행일 2017-02-27 제31면   |  수정 2017-02-27
[월요칼럼] 세금 혹은 상납금
허석윤 논설위원

우리나라에는 두 번의 해방일이 있다. 광복절과 세금해방일이다. 하지만 광복절과 달리 세금해방일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공식 기념일도 아니고 잘 알려져 있지도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세금해방일은 국민의 세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를 날짜로 환산해 보여주는 지표인데, 계산 방법은 간단하다. 한 해의 국민순소득(NNI)에서 조세총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연간 일수로 환산해 산출한다. 쉽게 말해 국민이 1년 치 세금을 다 내고 순수하게 자신이 쓸 돈을 벌기 시작하는 날이 세금해방일이다. 물론 세계 각국마다 세금해방일은 다른데 한국은 지난해 3월20일이었다. 아마 올해도 비슷할 것이라고 가정하면 우리는 연간 80일쯤은 나라에 세금을 내기 위해 일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세금해방일은 갈수록 늦어지는 추세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빠른 편이다. 미국은 4월이며, 특히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7~8월이다. 이것만 보면 우리 국민은 비교적 세금을 적게 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정부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19%대로 OECD 평균인 26%보다 훨씬 낮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통계의 맹점에 대해선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우선, 복지혜택이 천양지차인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을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보다는 우리가 세금을 낸 만큼 복지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물론 이와 관련해 왠지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대다수일 듯하다. 또한 세금과 별로 다를 게 없는 건강보험료나 각종 부담금 등 준조세 부담도 만만찮다. 여기에다 공교육 부실로 인해 개인이 지불할 수밖에 없는 사교육비까지 합치면 우리 국민의 사실상 세 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의 경우 아예 세금해방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논어에도 ‘가혹한 세금(정치)이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란 고사성어가 있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가 세금을 내기 위해 수많은 날들을 일해야 한다는 게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럼에도 국민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국민이 세금을 기꺼이 내기 위해선 전제 조건이 있다. 과세의 공평성과 예산 집행의 정당성인데, 둘 다 문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과세의 불공평성은 오랜 논란에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세금을 안 내거나 덜 내는 사람이 너무 많다. 현재 대다수 종교인과 근로소득자 절반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으며, 의사와 변호사 등 고소득전문직과 자영업자의 탈세도 심각하다. 여기에다 160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지하경제와 차명계좌, 역외거래를 이용한 탈세까지 더하면 도대체 세금이 얼마나 새는지 가늠조차 안 된다. 이로 인해 특히 ‘유리지갑’인 월급쟁이가 봉 노릇을 하고 있는데, 지난해는 근로소득세가 14%나 올라 사상 첫 30조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정부나 국가기관들이 세금을 제대로 쓰는지도 의심스럽다. 특히 특수활동비란 게 한 해 9천억원이나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국정원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그렇다고 쳐도 국회가 무슨 특수한 활동을 한다고 이 돈을 챙기는지 이해가 안 간다. 특수활동비는 사용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기에 주로 지체 높으신 분들의 쌈짓돈이 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세금이라는 이름의 국민 상납금인 셈이다. 하지만 특수활동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사회 곳곳에 세금 도둑질이나 예산 낭비가 만연해 있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니 알기도 어렵다. 더구나 요즘 나라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세금이 더욱 아깝다고 여길 만한데, 그나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대규모 예산농단으로 비화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두 사람이 미르·K스포츠 재단을 통해 국비 8천억원을 삼키려 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세금은 눈먼 돈이 아니라 국민의 피와 땀이다. 민생이 도탄에 빠질수록 말뿐인 조세정의부터 실현돼야 할 것이다.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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