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밤하늘의 별이 된 우리의 초상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2-25   |  발행일 2017-02-25 제23면   |  수정 2017-02-25
[토요단상] 밤하늘의 별이 된 우리의 초상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던 중학생 때 에바 부인을 이상화하며 연모하는 싱클레어를 따라 애를 태우던 기억이 있다. 스티븐 디덜러스(조이스·젊은 예술가의 초상)처럼 어른이 되고자 기를 쓰지는 않았어도 낭만적 사랑에 대한 동경으로 마음이 설렜던 것만은 분명했다. 로테의 곤혹(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그레트헨의 불행(괴테·파우스트)을 보며 그런 대책 없는 바람은 접었지만, 나오코에 대한 와타나베의 태도(하루키·노르웨이의 숲)나 타치오에 매료되는 아센바하의 모습(토마스 만·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보며 이해와 공감에 떠는 것은 여전히 어쩔 수 없다.

문학작품이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이 주는 인상은 이렇게 깊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들의 개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많은 인물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인간의 특성을 선명히 보여 주며 우리들의 가슴에 살아 있다.

‘고뇌하는 인간’을 떠올리면 햄릿과 베르테르, 이명준(최인훈·광장)이 앞에 나서고, ‘행동하는 자유인’ 하면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와 돈키호테가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부단히 탐색하는 인간으로는 이형식(이광수·무정)이나 조덕기(염상섭·삼대)를, 세상 경험을 통해 성숙해지는 인간으로는 프레데리크(플로베르·감정교육)와 빌헬름(괴테·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을 떠올릴 수 있다.

이념적인 인간은 어떠한가. 저 빳빳한 염상진(조정래·태백산맥)과 닐로브나와 파벨 모자(고리키·어머니), 어니스트 에버하드(잭 런던·강철군화) 등이 줄을 잇는다. 멍청한 인간도 챙겨 두자. ‘정신 승리법’을 보여 주는 아Q(노신·아Q정전),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조카(채만식·치숙)와 더불어, 선의 승리를 대변하는 이반(톨스토이·바보 이반)을 빼놓을 수 없다. 악과 관련해서도, 천하의 악당인 장형보(채만식·탁류)부터 신비스럽기까지 한 스타브로긴(도스토옙스키·악령)까지 다양한 인물을 만날 수 있다.

문학작품 속의 이러한 인물들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둘째 이유는, 각자 대단히 개성적이면서도 보편성을 띠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밝혀 주었듯이 문학예술은 구체적인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면서 인간 일반의 본성을 보여 주는 마술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앞서 열거한 개성적인 인물들 각각이 우리들 모두의 속에도 있는 그러한 특성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문학사를 수놓는 작품들의 등장인물들은 이렇게 우리들 자화상의 한 조각으로서 친숙하게 다가온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문학은 인간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도전하면서 우리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인정하고자 노력해 왔다. 보카치오와 세르반테스가 중세의 인간관을 허문 위에서 괴테가 근대적인 인간을 등장시켰으며, 계몽주의의 합리주의적인 인간형이 우리를 옥죌 때 도스토옙스키의 등장인물들이 우리의 숨통을 틔워 주었다. 우리들 속의 비합리적인 속성을 인정하게 하면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준 것이다.

현대문학의 인간 형상화는 이렇게 인간의 본성을 폭넓게 탐구함으로써 우리의 자유를 증진시켜 왔다. 상류층의 편협한 인간 이해를 무너뜨리는 톨스토이의 민중이나, 부르주아의 한계를 돌보게 하는 좌파문인들의 공산주의적 인간형, 우리를 질식시키는 고루한 윤리관에 맞서 로렌스나 헨리 밀러 등이 내세우는 인물 등은 모두, 인간의 전체적인 면모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의 자유를 증진시켜 주었다.

현대문학의 인간 탐구가 게놈 프로젝트와는 달리 인간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덧붙여 두자. 나오지(다자이 오사무·사양)의 고뇌와 코마로프스키의 비루함(파스테르나크·닥터 지바고)에서 확인되듯이, ‘인간은 모두 똑같다’는 생각에 대한 거부야말로 인간을 탐구하는 문학이 공유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