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개명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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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4   |  발행일 2017-02-24 제23면   |  수정 2017-02-24

미국 LA 북쪽 버뱅크시에 있는 보브 호프 공항이 조만간 할리우드 버뱅크 공항으로 이름이 바뀐다. 보브 호프 공항은 2003년부터 유명 코미디언 보브 호프의 이름을 딴 명칭을 사용해왔지만, 인지도가 낮다는 이유로 개명(改名) 요구가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 대부분의 미국인은 보브 호프 공항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 이에 따라 공항공단은 숙고 끝에 할리우드 버뱅크 공항으로 개명하기로 했다. 버뱅크시가 할리우드와 가깝고 많은 영화 스튜디오가 포진해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할리우드’를 새 공항 명칭에 원용(援用)한 만큼 개명효과가 작지 않을 듯싶다.

사람 이름이든 정당 명칭이든 개명에 관한 한 한국처럼 유별난 나라도 없을 것이다. 비선실세 최순실 일가와 주변 사람의 개명 행진도 이채롭다. 최씨는 1979년 필녀에서 순실로 개명했고 2014년엔 서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녀의 아버지 최태민씨는 도원·상훈·봉수 등 무려 7개의 이름을 사용했다. 딸은 정유연에서 정유라로 개명했고 조카 장시호의 옛 이름은 장유진이다. 비선진료 의혹을 받는 김영재 원장도 3년 전 김영복이라는 이름에서 개명했고, 그의 부인은 박인숙에서 박채윤으로 바꿨다.

이번에 간판을 바꿔 단 자유한국당의 개명 이력도 현란하다. 모태라 할 수 있는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에서 시작해 3공화국 민주공화당, 5공화국엔 민주정의당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3당 합당과 함께 민주자유당이 태어났다. 그 뒤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차례로 개명했다.

삼성그룹이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대구시 북구 옛 제일모직 터에 조성한 삼성창조경제단지의 이름도 삼성크리에이티브캠퍼스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흔적 지우기라는 시각도 있지만 굳이 시비 걸 일은 아니다. 다만 개명은 할리우드 버뱅크 공항처럼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정당 명칭 변경도 그렇다. 정체성과 구태는 그대로 답습하면서 문패만 교체하는 꼼수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은 창당한 지 100년이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공화당이고 민주당이다. 저들의 진득함과 진중한 태도는 개명을 밥 먹듯 하는 우리의 귀감이 될 만하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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