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가짜뉴스 혹은 좀비 바이러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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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3   |  발행일 2017-02-23 제31면   |  수정 2017-02-23
20170223
이은경 경제부장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다. 탄핵정국을 맞으면서 사회문제로 공론화되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는 간명하다. 객관적 진실에 대한 호도, 그로 인한 공론장의 붕괴.

가짜뉴스는 그 존재 자체가 퇴행적이다. 누구라도 동의하는 말이다. 가짜뉴스가 사회문제가 될 정도라면 그 사회가 퇴행적이란 말이다. 뉴스 유통의 건전한 사회적 구조가 강건하다면 그런 발상이 불가능하고, 발생한다 하더라도 사회적 의제로 떠오를 만큼 의미를 갖지 못하고, 그를 두고 벌이는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대어 가짜뉴스 현상에 대해 논의하자면, 우선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수용하는 집단이 퇴행적이란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가짜뉴스의 정체도 쉽게 정리된다. 퇴행적인 집단이 자신의 퇴행성을 가속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일종의 집단 최면술. 스스로 좀비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바이러스 정도로 보면 되겠다. ‘좀비 바이러스’란 표현이 지나치다면 논리와 세력의 대결에서 밀려 열패감을 느낀 이들의 강장제 정도로 적으면 될까.

가짜뉴스의 내용들은 적나라하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중국이 한국 내 유학생 6만명을 촛불집회에 몰래 참석시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한다’ ‘박영수 특검은 검사 재직 시절 성추행으로 징계처분 받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00t의 금괴를 집에 숨겨놓았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는 절차상 하자이므로 위헌이라고 발언했고 관련 동영상도 있다’

이런 가짜뉴스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위안이 될 것은 자명하다. SNS를 타고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다. 확증편향이다. 자신이 믿는 의견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추구하는 행동들. 그러면서 다른 의견과 진실은 외면하는 것. 그리하여 폐쇄적인 세계를 구성하고, 악순환이라는 소용돌이형의 원을 만든다. 그 원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을 지는 짐작이 간다. 현실과 괴리된 채 나타나는 광기다. 가짜뉴스를 ‘좀비 바이러스’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다. ‘부산행’을 비롯한 좀비 영화들이 비유하는 바로 그 세계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문제는 이 바이러스에 건강한 사람들도 감염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바로 답하기는 어렵다. 확신을 가지고 ‘노’라고 가능성을 부정하기 쉽지 않다. 가까운 미국을 보자. 분석에 의하면 트럼프의 말은 70%가 거짓이었다고 한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 트럼프는 열세를 만회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참·거짓을 떠나 그 발언들이 인간의 존엄과 인류보편의 가치를 훼손하는 난도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국 우선주의와 실익이라는 허약하지만 현실적인 주장이 있었으나, 사실 퇴행적인 신념이었고 그것이 미국을 지탱해 온 가치들을 삼킨 것이다.

우리라고 다를 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킨 힘은 박정희에 대한 향수였다. 유신시대로의 퇴행이라는 결과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물론 김기춘·우병우·조윤선 같은 엘리트 괴물을 낳았다. 대통령은 스스로 연설문을 고칠 의지도 없었다. 돌이켜보니 그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사실을 알고 있는 엘리트 집단과 언론들이 왜곡하거나 침묵하는 사이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진실을 알고 있는 집단의 의도된 왜곡 또는 방기, 그 결과로 나타난 사회 혼란과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가짜뉴스가 공론장에 모습을 보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현대사에서 보여준 압축성장, 이와 인과관계로 얽힌 밀실정치, 지역주의, 발전하지 못한 정치, 공론장의 부재 속에서 가짜뉴스가 만들어지고 번성할 근거를 제공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므로 이 가짜뉴스의 지배력 정도는 이제 한국 사회 변화와 성숙의 시험지로 작용할 듯하다. 가짜뉴스가 효용성을 유지한다면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시킨 정치 의식은 다시 깊은 잠에 빠지고, 탄핵을 계기로 안녕을 고할 박정희 시대는 단식 투쟁장 앞에서 피자를 먹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이은경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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