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진심의 공간과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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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3   |  발행일 2017-02-23 제30면   |  수정 2017-02-23
진심의 공간이란 것은
공적 공간에 구성된 영역
모순과 갈등을 대면하고
혁명적 공간으로 바뀌어
현실속 진정한 가치 창조
[여성칼럼] 진심의 공간과 모순
남인숙 대구예술발전소 소장

며칠 사이 연이어 한 권, 한 권 책이 날아왔다. 지인들이 보내준 선물이다. 적어도 한 해 이상을 몰두하면서 문자에 실어 놓은 이야기들은 한 존재의 고유함을 보여주는 매우 고상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진심의 공간’이라는 용어도 이 중 하나에서 빌려온 것이다. 절실해지는 이름이다. 한권의 책처럼 어떤 열정이 묶일 때 그 심층에서 가동되는 동력을 사람들은 ‘자아’나 ‘자기’라고 부른다. 학문적으로야 따져 묻겠지만, 여기서는 이를 ‘주체’라 불러도 무방하며, 진심은 주체 자신의 진심일 터이다. 일상이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매번 이 주체들이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려 한다는 점을 목격하게 된다. 자기를 증명하는 일은 자기를 뚜렷하게 구별 짓는 일이기에, 배제와 갈등의 시작이기도 하다. 진심이 곧바로 모순과 갈등의 원인이 되는 기이한 공간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기이한 공간을 보다 큰 틀에서 살피면, 서구문명에 대한 원주민 역사의 일방적 관계나 남성에 대한 여성의 관계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서구 과학의 지식을 진리로 강요한다거나, 다른 논리가 존재하는데 이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일방의 진심과 파국적 갈등이 얼마나 한 몸을 이루고 있는지 보여준다. 소소한 원한이랄까. 1군에서 5군 식품군을 외운 것이 두고두고 억울하다.

진심의 공간은 사실상 모순과 갈등이 상존할 수밖에 없는 ‘사적(私的)이자 공적인’ 숙명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공공적이고 기계적인 질서의 바깥에 있을 것 같은 이것이 사실은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역사적 공간이며 안팎이 뒤섞인 모순과 갈등의 공간이고, 공간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남성과 여성, 즉 주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제국이나 가부장’ 등 억압을 지시하는 용어를 사용치 않더라도 진심의 공간은 이미 공적인 공간 내부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진심의 공간을 찾는 일이 곧 모순과 갈등을 만들어내는 일일뿐 아니라 대면해야만 하는 일이라니, 헤겔 선생이 이성의 자기 이해의 여정을 그다지도 길게 기술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미드나잇 파리’를 보면, 한밤중 도심의 골목에서 옛 시간과 공간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린다. 주인공은 유례없이 반-전통의 일탈이 난무했던 지난 세기말의 전환기 유럽으로 옮겨간다. 역사는 그 무대를 예술이 난만한 아름다운 시절로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과의 단절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온갖 예술 형식의 직접적인 창시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무대야말로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 찬 근대성의 무대다. 무대를 채우는 일련의 흐름을 책에서는 ‘모더니즘’이라고 부르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진심을 이해받을 길 없어 방황하다가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구성된 자신의 자아를 통해 현재로 복귀한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 현재의 무의미함과 소외 때문에 자신이 생각한 이상향의 무대로 옮겨 가, 자기의 욕망을 재구성하여 다시 현실로 복귀한 것.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이상적인 사랑을 상실하고 다른 선물, 즉 현실의 사랑 대상을 얻게 된다. 드디어 현실에 가치를 부여하게 됨으로써 주인공은 자신의 진심을 현실 속에 증명하게 된 것이다. 무명작가인 주인공이 예술이라는 환영을 통해 이상적인 여인을 만나고, 그 여인을 잃어버리게 됨으로써 현실감을 되찾는 과정은 진심의 공간을 증명하고자 하는 일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단면을 보여준다.

이상향이나 꿈, 환영처럼 유령의 형식을 빌린다 할지라도 진심의 공간이란 괄호 쳐진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현실감을 얻어 공적인 장소 내부에서 그 가치를 실현하게 되는 서사의 공간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심의 공간의 구성과 더불어 생성되는 모순과 대면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진심의 공간이 혁명의 공간이 되어 현실 속의 가치를 생성하는 일인 것이다. ‘미드나잇 파리’의 주인공이 현재를 발견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진심의 공간을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웃에게 증명해 보이려는 노력 때문이다.

남인숙 대구예술발전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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