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조작국 지정땐 환율하락…지역 자동차부품업계 큰 타격 우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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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1 07:47  |  수정 2017-02-21 07:47  |  발행일 2017-02-21 제16면
[경제 이슈분석] 美, 韓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20170221

美, 대구 2위 수출국…전체 15%
철강·전자·정유 등도 ‘빨간불’
“가능성 낮지만 대응책 고민해야”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수출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에 물건을 많이 파는 나라가 자국 화폐가치를 떨어뜨려 이익을 많이 남기고 있을 경우 미국 정부는 해당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높은 관세를 매기거나 수입을 중단하고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 제품의 가격이 관세 등의 이유로 크게 올라갈 수 있고,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 기업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때문에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대구지역의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을 중심으로 전자·정유·철강 업계에서는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대구지역 2위 수출국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지역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환율 하락이다. 특히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부품이 가장 큰 영향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지역 제조업체들의 고민은 비슷하다.

GM과 크라이슬러에 납품을 하고 있는 대구지역의 자동차부품회사 A대표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 환율이 하락하고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수익구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환율이 대폭 하락할 경우 경영 전략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바란다”고 했다.

최근 대미 수출이 연간 10% 정도 늘어나고 있다는 산업용 장갑 제조업체 B대표는 “환율 하락은 분명한 악재가 될 것”이라면서 “환변동보험 가입과 가격 조정 등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절삭공구 업체 C대표는 “현재 뚜렷한 대응 방안은 없다”면서 “완제품 수출도 있지만 원재료 수입도 있어 환율이 떨어져도 상쇄되지 않을까 위로하고 있다. 환율도 문제지만 바이어의 주문 물량 급감은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상의와 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에 이어 대구지역의 2위 수출국으로 꼽힌다. 지역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1%에 달한다. 3위인 일본과는 2배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수입도 3위 교역국으로 전체 수입의 6.1%를 차지한다. 지난해 7억8천221만달러의 무역수지를 기록한 대구지역의 오랜 무역 흑자국이다. 대미 무역수지는 2012년 6억달러대에 올라선 이후 매년 6억~7억달러 규모의 흑자를 꾸준하게 유지해오고 있다. 대구지역의 대미 수출품목은 자동차부품(26.0%) 비중이 가장 높고, 기타 자동차(9.6%), 기타 철강금속제품(8.0%) 순이다. 반면 대미 수입품목은 사료(7.6%)와 합성수지(5.8%) 비중이 높고 꿀(3.8%), 펌프(3.2%) 순을 보이고 있다.

◆적정환율 1천37원, 더 떨어지면 빨간불

원·달러 환율은 최근 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원·달러는 지난달 초 1천210원 선에 근접했지만 최근 1천100원 선까지 급락하는 등 가파른 되돌림을 겪기도 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손익분기점 평균 환율은 1천45원으로 중소기업이 1천46원, 대기업이 1천40원으로 보고 있다. 적정환율은 평균 1천73원으로 중소기업이 1천73원, 대기업이 1천69원 수준이다. 아직까지는 국내 수출기업들이 환율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환율이 내려가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환율이 하락할 경우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질 수도 있다.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 장기적으로 업계 전체가 수조원에 달하는 경영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 글로벌경영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 시 국내 자동차산업의 매출액이 4천억원가량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삼성과 LG전자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도 환율 하락에 민감한 업종으로 꼽힌다. 원화가치 상승은 완성품을 판매하는 기업과 완성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 모두에 부담이 되고 있다. 철강업계도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 미국의 수입제한 조치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산업군으로 분류된다.

◆가능성 낮지만 대응 고민해야

미국은 매월 4월과 10월 환율보고서를 발표하며, 한국 역시 관찰대상국에 지정돼 있다. 미국은 2015년 제정한 무역촉진법(BHC법안)에 입각해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비중 3% 이상, 외환시장 개입 2% 이상의 기준 가운데 2가지를 충족하면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다. 지난해 10월 환율보고서 기준으로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302억달러로 200억달러를 초과하고 경상수지 흑자도 7.9%에 달해 GDP 대비 3% 초과 조건 등 2가지를 충족해 관찰대상국에 지정됐다. 환율조작국인 심층분석대상국이 되려면 3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하는 만큼 아직 여유가 있는 상태다.

하지만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때마침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진정한 환율조작국은 한국"이라고 명시하며 한국 정부의 신경을 더욱 곤두서게 만들었다.

전문가들도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환율조작국 지정 시 영향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환율조작국 지정 시에는 원화 강세가 불가피하다. 한국은 1988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후 1990년 2월 복수통화바스켓제도에서 시장평균환율제로 변화를 꾀한 후에야 지정 해제될 수 있었다. 1988년 당시에는 원·달러 환율이 5% 이상 하락한 바 있고, 원화 강세로 인해 대미 수출이 크게 감소하면서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IBK투자증권은 올해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면 1988년보다 여파가 더 길고 타격도 클 것으로 전망했다. 원화 절상폭이 더 확대될 수 있고 그만큼 수출과 생산 둔화로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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