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귀농 가장 큰 원인은 소득 부족…귀농 정착 중·장기대책 절실”

  • 최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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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1 07:38  |  수정 2017-02-21 07:39  |  발행일 2017-02-21 제7면
귀농 1번지 경북 ‘역귀농 그늘’
20170221
경북도에 귀농한 가구는 2010년 1천112가구에서 2015년 2천221가구로 두 배가량 늘었다. 하지만 적은 농가 소득과 정착 지원책 부족 등으로 다시 도시행을 택하는 역귀농 가구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농촌 들녘에서 농부가 트랙터를 이용해 밭을 일구며 봄농사 준비를 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귀농 1번지’. 경북의 또 다른 이름이다. 경북도는 이 같은 흐름을 발판 삼아 귀농을 소규모 시·군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하지만 귀농가구가 많은 만큼 경북에서는 역귀농 움직임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철저한 준비와 부푼 꿈을 안고 귀농을 결정했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다시 도시행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귀농의 꿈’을 접는 이들이 늘수록 농촌 활성화라는 경북의 이상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 영남일보는 귀농이 농촌 활성화의 밑거름이라는 판단 아래 보완할 점을 짚어봤다. 귀농·역귀농한 이들의 사례를 토대로 했다.

◆경북 귀농·역귀농 실태는

경북은 귀농통계조사가 시작된 2004년부터 매년 가장 많은 귀농가구 수를 기록하고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2004년 334가구로 시작한 경북의 귀농가구는 3년 만에 두 배 이상(772가구) 늘었다. 기세를 몰아 2009년을 기점으로 1천가구를 돌파했다. 그 이후에도 귀농가구는 △2012년 2천80가구 △2013년 1천931가구 △2014년 2천112가구 등으로 증가했다. 2015년에는 2천221가구로, 전국의 18.6%를 차지했다. 비교적 저렴한 토지가격, 고소득 작물위주의 농업구조 등이 배경으로 꼽힌다. 또 각 시·군이 ‘모객’을 위해 대대적으로 펼친 귀농지원정책도 한몫했다.


경북 한해 귀농 2천가구 넘지만
정착지원금 혜택 150가구 안팎

농산물값 후려치기에 수익 안나
교육·의료 등 정주여건도 미흡
일부는 적응 실패 ‘다시 도시行’



하지만 역귀농에 대한 대비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진행돼 왔다. 경북도는 역귀농에 대한 실태조사를 펼친 적이 없다. 매년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귀농·귀촌실태조사와 달리 역귀농은 조사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조사를 진행한다 할지라도 개별 면담조사에 대한 부담과 개인정보보호 등의 문제가 남아있다. 이 때문에 경북지역의 역귀농 실태는 개별 조사자의 경험에 근거한 추정치로만 존재해 왔다.

한편, 전국 단위로는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2012~2015년 귀농·귀촌 1천가구씩을 대상으로 실시한 역귀농 조사결과가 있다. 그 결과 다시 도시로 돌아오거나 계획 중인 경우가 각각 4%와 11.4%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일보 취재 결과, 역귀농을 고민·결심하도록 만드는 요소로는 소득 부족, 개인 준비부족, 정주여건 등이 언급됐다. 앞서 농식품부 조사에서 귀농인들은 역귀농 사유로 △소득 부족(37.8%) △농업노동 부적응(18%) △이웃 갈등·고립감(16.9%) △가족 불만(15.3%) △생활 불편(12%) 등을 꼽았다.

◆귀농 준비만 6년…소득 부족으로 결국 역귀농

백문기씨(48)는 무려 6년간 귀농을 준비했다. 구미와 의성을 매주 오가며 자두·아로니아 등 주말농사를 지었다. ‘귀농의 꿈’을 품은 뒤 농사가 적성에 맞는지, 수익은 얼마나 나는지를 가늠하기 위한 기간이었다. 철저한 준비를 토대로 신중히 결정한 귀농이었지만 2년 여가 지난 현재 백씨 가족은 다시 ‘도시행’을 준비 중이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소득 부족이었다. 백씨는 “공판장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가격 후려치기’가 어마어마해요. 자두 5㎏에 1천500원이라는 게 이해돼요? 의성에서 계속 농사를 지은 사람한테는 값을 잘 쳐주고,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품질이 안 좋다며 말도 안 되는 값을 줍니다. 수익이 안 나는 게 당연하죠”라고 말했다.

그는 “오랜 준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며 “대부분의 지자체 지원사업이 귀농 초기에 집중돼 있는데 생산물 판로 확보 등 귀농인이 장기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경북도 내 시·군의 주된 귀농지원정책은 △귀농정착지원금 △농어촌진흥기금 융자사업 △주택구입 및 수리비용 △창업 지원 △이사비용 지원 △마을투어 및 기술교육 등이다. 대다수가 유입~정착 시기에 해당한다. 정착 이후에 대한 지원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영숙 경북도 농업정책과장은 “지금껏 귀농정책은 고령화되고 소멸위기를 맞은 농촌을 살리기 위한 단편적 방안으로 시행돼 왔다. 도에서는 체계적 변화를 위해 시·군 귀농인을 찾아 직접 교육하는 등의 종합계획을 세우고 있다. 귀농정책이 전환의 시점을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급증하는 귀농인…못 따라잡는 지원책

귀농지원정책이 급증하는 귀농추세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각 귀농 세대에 400만~480만원 상당의 정착지원금을 지급하는 귀농정착지원금의 예산규모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7억5천만원으로 동일했다. 혜택받는 가구수는 매년 150가구 안팎. 그러나 같은 기간 경북도에 귀농한 가구는 2010년 1천112가구에서 2015년 2천221가구로 두 배가량 늘었다. 정착지원금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남해길 청송귀농귀촌고민센터 대표는 “귀농에 있어 지원정책이 전부는 아니지만 초기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오는 사람은 많은데 돈이 한정돼 있어 지원을 받으려고 하다가 좌절하는 분을 꽤 봤다. 이런 사정이 뻔하다보니 처음부터 지자체 지원을 포기하겠다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지원사업 신청조건으로 인해 수혜를 못받는 경우도 있었다. 각 시·군은 대부분의 사업에 60~65세 이하(미만)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연령 기준을 초과하는 귀농인은 귀촌으로 분류돼 경우에 따라 주택 수리비, 정착 지원, 소득 지원 등의 지자체 지원을 받지 못한다. 또 부부 이상의 가족이 전입하는 것을 신청조건으로 삼은 곳도 있어 개인이 귀농하는 경우에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60대 이상의 귀농가구주는 10명 중 3명꼴(30.1%)이었다. 1인 귀농가구는 10명 중 6명 꼴(60%)이다.

3년 전 대구에서 의성으로 귀농해 자두 농사를 짓는 박모씨(69)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농사를 안 짓는 것도, 못 짓는 것도 아닌데 왜 귀촌으로 분류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섣불리 귀농했다가 다시 도시행

과거에 비해 귀농교육을 받을 기회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환상 속의 귀농’을 꿈꾸다 현실의 벽을 마주한 이들도 있었다.

대구에 거주하던 박모씨(38)는 2013년 봄 무렵 귀농을 꿈꾸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감이 들던 때 주변에서 사과농사 수입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6개월가량 귀농을 알아본 박씨는 지인의 소개로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는 청송의 땅을 샀다. 귀농한 뒤에는 컨테이너를 개조한 집에서 홀로 생활하며 농사일에 주력했다. 투자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각종 농기계도 덜컥 구입했다. 이렇게 든 초기비용이 3억원가량.

하지만 박씨는 1년도 채 안 돼 대구로 돌아왔다. 그는 “귀농인을 노린 업자에게 속았다”고 했다. 박씨가 매입한 밭의 사과나무는 상품화 가치가 낮은 품종이었다. “좋은 품종이라는 말만 믿고 샀는데…. 도시사람들은 현지 사정에 어둡잖아요. 무턱대고 귀농했다”며 “귀농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공부 정말 많이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오인하 전국귀농귀촌연합회 회장은 “준비없이 들어오면 백전백패한다. 현장에서 보면 준비가 안돼 역귀농하는 사람이 20~30%”라며 “어릴 때 농사지은 사람도 변한 농업환경에 적응 못 하는 게 현실이다. 또 도시민들이 농민의 보수적인 성향을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생기기도 하는데 귀농교육엔 그 갈등을 줄이는 내용도 포함된다”고 조언했다.

◆정주여건 개선도 필요

이 밖에 귀농인구의 장기 정착을 위해 교육·의료 등 정주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대구에서 상주로 귀향해 농사를 짓고 있는 정모씨(42)는 “시골생활하는 동안 느끼는 가장 큰 고민거리가 경제활동이고, 2순위가 교육·의료·문화의 부족이다. 도시와 거리를 두기 위해 귀농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교육·의료는 필수적인 시설”이라며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더 큰 공백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 발표에 나온 2015년 귀농가구주 연령을 보면 취학연령 자녀가 많은 30대 이하~40대가 29.6%를 차지했다. 하지만 농촌은 저출산 추세에 더해 학생 수 감소 등으로 인해 학교를 더 세우기 곤란한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소규모학교 통폐합 움직임도 활발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소규모학교 통폐합 권고기준’ 적용 결과, 경북지역 444개 초·중·고교가 통폐합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북지역 초·중·고 1천1개교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의료시설 역시 비교적 열악하다. 경북 23개 시·군에서 운영되고 있는 종합병원 및 일반병원 등의 응급실은 총 38개소다. 이 중 종합병원급은 18개소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경북에서 유일했던 신생아 집중치료실이 폐쇄됐다.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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