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식물형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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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0 07:58  |  수정 2017-02-20 07:58  |  발행일 2017-02-20 제24면
신문광 <화가>
[문화산책] 식물형으로 산다
신문광 <화가>

매주 화요일 공부 모임의 회원들은 한겨울도 잊은 채 모두 아프리카 여행을 떠났다. 아프리카는 나에게 꿈처럼 멀고 일정이 긴 여행이라 왠지 자신이 없어 따라가지 못하고 일찍 포기했다. 늘 이렇듯 여행은 꿈만 꾸는 일이 되고 수많은 기회를 그렇게 놓쳤다. 그리고 앉아서 회원들이 보낸 새파란 초원의 풍경 사진들을 카톡으로 받아 보면서 아프리카를 상상해 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자동차로 뱅글뱅글 돌아도 30분이면 충분한 딱 그만큼의 거리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그것은 화분 속에서 평생을 사는 나무·풀잎 같은 것과 닮은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쉽게 옮겨 가지 못하는 식물형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더 넓고 더 큰 곳으로 옮겨 가고 싶은 마음도 많아 잠시 떠나 보았지만 결국 되돌아오고 말았다. 화분 속 같은 내 자리가 제일 편안한 명당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길거리를 떠도는 불쌍한 개와 고양이들을 집으로 데려가 먹이고 돌본다고 한다. 나는 식물형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곳에서 말라죽어 가는 화분의 작은 나무나 화초들이 눈에 잘 띄고 그냥 볼 수가 없어서 가끔 집으로 데려온다.

무슨 전문 지식 같은 건 전혀 없지만 화분의 식물을 보면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어디가 제 자리인지 알 것 같아서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대충 물을 주고 베란다 창 밑에 그냥 놓아두는 게 전부지만 며칠 지나면 반드시 모습이 달라지고 제 삶과 할 일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들어 생명이 다한 것처럼 보이는 식물이 실은 잠시 잠을 자듯 멈추어 있을 뿐이고, 금방 화사한 소리를 내며 제 속마음을 내보일 때는 함께 소리 지르며 노래하고 싶을 만큼 기쁜 순간이 된다. 조용하지만 힘찬 에너지를 보면 나도 화초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드디어 알게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 여행은 가지 못했지만 화분 속 같은 내 땅에서 지금 하고 있는 소소한 작업도 다음에는 모두를 놀라게 할 결과로 만들어 보고 싶다. 가만히 있는 듯 보이는 조용한 시간이 오히려 더 큰 결과를 만드는 기초 영양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작고 사소한 일을 멈추지 않고 모아 두면 놀랄 만한 기쁨으로 변하니 식물형으로 살기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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