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말 타고 꽃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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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4   |  발행일 2017-02-14 제31면   |  수정 2017-02-14
[CEO 칼럼] 말 타고 꽃구경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입춘(立春)이 지났다. 이제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때이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면 우리네 마음속에도 바람이 분다. 가까운 곳에 나들이하고픈 소박한 바람.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연소답청(年少踏靑)’은 해학적 모습으로 유명하다. 당시 말은 고관대작이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기생들이 말을 타고, 양반들은 내려서 걸어가는 모습이 또 다른 시각의 접근이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산과 들이 지척이라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누구나 봄날의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옛 사람들이 기를 쓰고 빌리거나 얻어 타서라도 꽃구경에 ‘말’을 동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빨리 이동할 수 있고, 허세도 부리고 싶은 갖가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말을 타 본 경험자들은 하나같이 눈과 온몸으로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이 큰 이유라고 얘기한다. 말 등에 올라타고 바라본 봄 풍경은 이전과 사뭇 다른 인상(印象)을 주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승마는 한마디로 새로운 뷰포인트(View Point)를 선사한다. 그것은 기껏해야 1m 이내의 눈높이 차이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전해준다. 마치 어린 시절 그네를 타거나,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바라본 세상이 신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오늘날 학계의 연구결과를 통해 증명된 승마의 유익함은 다양하다. 전신 운동, 자세 교정, 집중력 강화, 정서 순화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이 들 정도다. 이런 면에서 옛 사람들의 글과 그림에 나타난 말 위에서 바라본 세상의 색다른 풍경과 감동도 여기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 맞다.

이것은 기마 민족인 우리 조상들이 함양하던 ‘호연지기’와도 맞닿아 있다. 신라의 인재들도 말을 달리며 호연지기를 키웠다고 전한다. 그래서 오늘날 승마 대중화는 학교 교육을 통한 문명의 습득과 정보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지난해 봄, 방송을 통해 바닷가에서 말을 타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섬, 전남 신안군 임자도라는 곳에서 국가대표를 꿈꾸는 유소년 승마단원들이 주인공이었다. 인구 약 3천 명 중에 초·중학생 30여 명이 수업 후 태권도나 피아노를 배우듯이 승마를 배우고 있었다.

섬에서 나고 자라 까맣게 그을린 얼굴의 아이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말을 돌보고, 바닷가에서 신나게 말을 달리는 모습을 보며 ‘승마대중화란 이런 것’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마라고 하면 연미복, 고가의 승용마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의 청소년, 국민들이 말을 타고 더 넓고 아름다운 세상, 우리의 강과 산, 바다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승마 보급은 나라 사랑의 또 다른 긍정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국마사회는 1990년대부터 승마대중화 사업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어린이승마교실’ ‘생활체육승마’ ‘전국민말타기운동’ 등 다양한 사업들이 승마 대중화에 기여해왔다.

지자체들의 자발적인 승마 보급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받아 저렴하게 승마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전국에서 운영 중이다. 실제 승마의 전 단계로, 최신 기술을 적용해 쉽게 배울 수 있는 스크린 승마장도 늘어나고 있다.

지금 공공장소 어디에서나 손쉽게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승마도 자전거처럼 가까운 곳에서 접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우리가 꿈꾸며 나아가는 승마 대중화의 모습일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말 등에 올라타, 생동하는 대지의 활력과 ‘1m 높이’가 전하는 경이로운 세상을 느껴보기를 권해본다.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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