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가짜뉴스의 공포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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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4   |  발행일 2017-02-14 제30면   |  수정 2017-02-14
20170214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가짜뉴스로 지구촌이 몸살
가짜뉴스 양산되는 원인은
보고싶은 것만 보는 현세태
대응책 제대로 마련 못하면
또다시 국민이 불행해진다

지구촌이 가짜뉴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짜뉴스(fake news)가 트럼프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의 대통령 불출마에도 가짜뉴스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가짜뉴스의 공포스러운 위력이다.

가짜뉴스가 최근 느닷없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만우절 가짜뉴스는 서구의 유력방송, 신문 등이 즐겨하던 고전적 놀이다. 영국 BBC의 뉴스쇼 파노라마는 1957년 4월1일 스파게티가 열리는 나무를 소개했다. 2008년에는 남극에서 하늘을 나는 펭귄떼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누구나 이 뉴스가 만우절을 기념한 장난 뉴스라는 것을 안다. 누구도 이 뉴스로 피해를 입지 않았다. 반면 요즘 세상에 넘쳐나는 가짜뉴스는 피해자를 양산한다. 엉뚱한 사람을 대통령에 당선시켜 세상을 요란스럽게 만들고, 핵 전쟁을 유발할 수도 있다. 최근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파키스탄을 핵공격하겠다고 말했다는 가짜뉴스를 믿고, 실제 파키스탄 국방장관이 강경대응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는 일까지 벌어졌다.

가짜뉴스의 범람은 충분히 예견됐다. 뉴스 공급자가 전통적인 신문과 방송에서 인터넷의 발달로 각종 포털사이트,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일방적으로 뉴스를 공급받던 개인들이 직접 뉴스를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짜뉴스 양산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제도권 언론도 완벽하게 오보를 막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개인을 포함한 제도권 밖 뉴스 생산자들이 쏟아내는 뉴스의 상당 부분은 가짜일 수밖에 없다. 가짜뉴스 확산에는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세태도 한몫하고 있다. 특히 일대일 메신저, 그룹형 채팅방 등 폐쇄형 네트워크에서 유통되는 가짜뉴스는 그 폐해가 더 심각하다. 이곳에서는 같은 생각과 정보를 공유한 사람들이 편견을 강화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적대감을 높인다. 가짜뉴스를 진짜뉴스로 믿고 싶어하고, 더 나아가 이를 주변으로 전파하려 한다. 최근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빚어지는 갖은 논란이 대표적 사례다.

가짜뉴스는 앞으로 더 넘쳐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가짜뉴스 유통을 그냥 지켜볼 수도 없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업체 구글과 페이스북이 오는 4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온라인 가짜뉴스 근절을 목표로 프랑스 8개 주요 언론사와 함께 팩트 체크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오는 9월 연방의회 선거를 앞둔 독일도 페이스북이 가짜뉴스를 방치하면 건당 50만유로(약 6억원)의 벌금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하원의원들은 가짜뉴스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보고 아예 학교에서 가짜뉴스 판별법을 가르치도록 하자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 방송인 CNN 머니는 최근 가짜뉴스를 추려낼 전문기자를 뽑는다는 구인광고를 냈다. 최소 6년차 이상의 기자로 ‘부정확한 것을 볼 때마다 화가 나는 사람’을 채용 조건으로 내걸었다. 뉴스를 진짜, 가짜로 구분하는 새로운 직업(팩트 체커)이 하나 탄생한 셈이다.

조기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도 가짜뉴스의 공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럼에도 뚜렷한 대응책은 없다. 과거에는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법 조항(구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이 있었지만 2010년 미네르바 사건을 계기로 위헌판결을 받은 뒤 2015년 완전히 폐지됐다.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으로 가짜뉴스 유포자를 고발할 수는 있지만 악의적 가짜뉴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 당장 가짜뉴스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우리도 진짜뉴스를 가린 가짜뉴스에 현혹돼 국민을 불행하게 할 대통령을 뽑을 수도 있다.

가짜가 진짜를 영원히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진짜가 가짜를 이기는 데는 적잖은 희생과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정신 바짝차리지 않으면.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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