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봄, 졸업,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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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3 07:46  |  수정 2017-02-13 07:46  |  발행일 2017-02-13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봄, 졸업, 새로운 시작

고교 시절 어느 수필에서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라는 시구를 처음 읽었다. 영국 낭만파 시인 퍼시 B. 셸리의 유명한 시 ‘서풍부(西風賦)’의 마지막 구절이다.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온다는 당연하고 밋밋한 표현이 어찌하여 전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구가 될 수 있었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영국은 위도가 높아 겨울이 유난히 길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봄을 더 간절히 기다려서 그런가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때의 추론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봄날 영국의 공원이나 정원을 걸어본 사람은 잉글랜드의 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셸리는 키츠·바이런과 함께 영국 낭만주의를 만개시킨 시인이다. 그는 지상에 묶여 있는 사물들보다는 구름·바람·하늘·별 같은 것들에 더 친근감을 느꼈으며, 신화적 상상력으로 지고한 미와 사랑에 탐닉하며 서정성 넘치는 시를 썼다. 그는 명문 이튼을 거쳐 옥스퍼드에 입학했지만 도를 넘는 이상에의 열망과 억압에 대한 저항 정신 때문에 쫓겨났다. 이후 영국과 아일랜드를 방랑하다가 대륙으로 건너가 스위스·이탈리아 등을 주유하면서 대표작 ‘서풍부’를 썼다. 이 시에서 시인은 온갖 부정과 불합리 속에서 억압받으며 쓰러져가는 인간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했다. 자연 세계에서는 갱생을 위한 변화가 서풍에 의해 이뤄지는데, 인간 세계에서는 그런 혁신이 잘 이뤄지지 않으니 차라리 그 은총을 받는 잎이나 구름이 될 수 있기를 노래했다. 시인은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을 서풍과 동일시하며, 시인이 품고 있는 혁명적인 이상과 사상들이 세계 속에 심어져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서 갱생하기를 소망했다.

시인은 자신이 하나의 수금(竪琴)이 되어 바람이 불 때마다 사람들에게 갱생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 서풍은 파괴자이자 보존자이며, 죽음 뒤의 재생을 가져다주는 생명과 조화의 힘이다. 시인의 수금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예언자의 목소리였다. 시인은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라는 마지막 행을 주문처럼 외우며 불의와 억압의 겨울이 죽고 새로운 희망이 피어나는 봄의 탄생을 노래했다.

입춘 지나자 담벼락에 아른거리는 햇살이 좀 더 통통해지는 것 같다. 2월은 졸업의 달이다. 꿈꾸던 학교에 진학한 학생과 그렇지 못해 차선의 길을 선택한 학생들 모두가 학교를 떠난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해를 더 공부해야하는 학생들도 많다.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꿈을 잃지 않고, 이상과 열정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으면, 봄날 그 소망은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어날 것이다. 졸업을 뜻하는 영어 단어 ‘commencement’는 새로운 시작이란 의미도 있다. 이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하는 학생들도 겨울 다음에는 반드시 봄이 온다는 사실을 믿고 어깨를 활짝 펴야 한다. 긴 호흡으로 멀리 보며 차근차근 나아가다 보면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 꽃샘바람 시샘해도 때가 되면 꽃은 저절로 피어나는 법이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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