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흥의 음악칼럼] 작곡 슈베르트·작시 빌헬름 뮐러-노래 페터 슈라이어 ‘겨울 여행(Winterreise)’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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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0   |  발행일 2017-02-10 제40면   |  수정 2017-02-10
‘겨울 나그네’로 잘 알려진 24曲의 연가곡…죽음 예감한 슈베르트의 비탄 고스란히 담겨
[전태흥의 음악칼럼] 작곡 슈베르트·작시 빌헬름 뮐러-노래 페터 슈라이어 ‘겨울 여행(Winterreise)’
[전태흥의 음악칼럼] 작곡 슈베르트·작시 빌헬름 뮐러-노래 페터 슈라이어 ‘겨울 여행(Winterreise)’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여행’은 일본어 번역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겨울 나그네’가 되었다. 아마도 일본인들에게는 겨울 여행보다는 겨울 나그네가 더 슈베르트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 노래들을 듣다 보면 여행이라는 의미보다는 나그네가 더 다가오기도 한다.

24곡으로 이루어진 연가곡 ‘겨울 여행’ 중에서 다섯째 곡 ‘보리수’는 결코 잊지 못할 두 번의 기억을 나에게 안겨줬다. 첫 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다. 고교 2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학교는 방송국에서 여는 고등학생이 참가하는 중창대회에 출연하기 위해 연습에 한창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음악 선생님은 중창곡으로 성 프란치스코 작시, 벤자민 할란 작곡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선택했다. 연습은 거의 한 달이 넘게 방학 내내 진행됐고 방송출연 일주일을 앞두고 학교의 관계자 앞에서 리허설을 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평가를 기다리는 중창단은 재단 관계자와 교장으로부터 곡을 바꾸라는 지시를 받았다. 재단의 이사장이 독실한 불교도인데 어떻게 기독교 노래를 들고 방송에 나가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음악 선생님은 연습할 시간이 없다고 항의했지만, 교장을 비롯한 재단 관계자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임시교사였던 선생님과 중창단은 한 달 넘게 연습했던 곡을 단지 부처께서 득도하신 나무가 보리수였다는 이유만으로 슈베르트의 ‘보리수’로 바꾸게 됐다.

보리수라는 노래가 어떤 내용인지는 아무런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그저 보리수이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다. 눈부신 조명 탓이 아니더라도 일주일간의 연습만으로 좋은 화음을 낼 수 없었고 방송 출연 후 음악 선생님은 그렇게 당연한 듯이 교체됐다. 슈베르트가 알지 못했고 알 수 없었던 낯선 땅에서 그의 노래 ‘보리수’는 까까머리 고등학생에게 아픈 기억이 됐다.

슈베르트에 대한 둘째 기억은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의 배경으로 알려진 인도 북부에 있는 라다크로 가는 길에 있다. 지금까지도 파키스탄과 종교적 갈등으로 테러가 끊이지 않는 인도의 스리나가르에서 라다크의 수도 레로 가는 길은 먼 길이었다. 배낭 여행길의 가장 큰 위로는 낯설음과 설렘이지만 음악 또한 큰 버팀목이 된다.

완행버스로 1박2일을 가는 버스는 하루가 지나고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에 매달린 길을 달렸다. 더구나 맞은편에서 다른 차가 올 때면 아슬아슬한 곡예로 절벽 끝에 매달려 길을 양보하곤 했다. 창밖을 내다보면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죽음의 입구에서 들리는 소리 같았다. 그렇게 힘겹게 언덕을 오르던 운전기사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승객은 마치 기사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모두 차에서 내려 남자는 낭떠러지 쪽에서 여자는 산 쪽에서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낭떠러지에 서서 문득 어쩌면 죽음이란 이처럼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도 기억할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발만, 단 한 발만 내디딘다면 자유로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애절한 양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길 잃은 새끼 양을 찾은 어미 양의 울음소리였다. 양치기가 새끼 양을 찾아 어미 양에게 돌려줄 때까지 어미 양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양떼가 다 지나갈 때까지 낭떠러지 끝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버스에 다시 타고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흐르는 눈물 위로 들려온 노래는 슈베르트의 ‘겨울 여행’이었다. 레라는 곳에 도착한 그날, 밤을 꼬박 새워 앓았다. 세상을 구하겠노라 소리치며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 못난 아들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의 눈물이 슈베르트의 그 노래에 묻어 흘렀다.

슈베르트를 들을 때마다 그가 느꼈을 그 고독과 절망을 느낀다. 특히 그가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30세에 쓴 연가곡 ‘겨울 여행’은 외로움에 지쳐 집창촌을 들락거리다 매독에 걸려 죽음을 예감한 작곡가의 비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빌헬름 뮐러가 쓴 연작시를 가져와 곡을 썼지만, 시와 달리 우울한 느낌이 강하고 원작의 순서와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사랑을 잃은 남자의 정처 없는 방랑 속에 나타난 쓸쓸함은 슈베르트의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24곡의 노래 중에서 특히 제5번 ‘보리수’가 유명하다. 이 가곡집의 가장 대중적인 성악가로는 테너 페터 슈라이어와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가 알려져 있지만, 두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두와 브리기테 파스벤더의 노래를 들어보는 것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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