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춘향의 나라, 변사또가 뜬다

  • 변종현
  • |
  • 입력 2017-02-09   |  발행일 2017-02-09 제31면   |  수정 2021-08-22 11:38
[영남타워] 춘향의 나라, 변사또가 뜬다
변종현 경북부장

‘(지방사람) 이몽룡과 변학도는 자체 실력만으로는 (서로) 대결할 수도 없다. 변학도의 폭정이나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는 정의롭지 못한 요구도 지방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이몽룡은 중앙에 올라가 어렵게 과거를 봐야 했고,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임금으로부터 얻은 권위를 가지고 내려와서야 변학도를 칠 수가 있었다. 중앙의 개입이 없이는 지방의 인권이 보장될 길이 없는 이러한 사태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비극적인 것이다.’

도올 김용옥은 지난해 ‘우리나라는 춘향전의 나라’라며 지방자치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고대소설 ‘춘향전’ 속의 비극적 사태가 중앙의 위탁을 받은 암행어사의 힘에 의해 해피엔딩으로 전환될 때 민중은 쾌감을 얻는다고 했다. 감성과 정서를 건드리고 있지만 지방자치를 폄훼하고 있다. 그는 더 나아가 자학과 환희의 모순된 이중주가 한국인의 정서에 배어 있다고까지 했다. 어렵게 자유를 얻었지만 오히려 억압받고 구속받던 과거가 그리워진다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녕 그런가. 지방은 자치를 얻고도 중앙예속이 그리운 걸까.

왕조 시절이나 전근대적 정치체계를 갖고 있는 국가에서 빚어진 현상을 지금 시대에 대입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지방역량의 한계와 중앙예속의 긴 그림자를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 이와는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조기 실시 가능성이 높아진 제19대 대통령선거 중심에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있다는 점이다. 촉박해질 수 있는 대선 일정 때문에 몸 풀 시간도 없이, 하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선의 링 위로 오르고 있다. 중도에 링에서 내려왔거나 현재 링에 오르려고 몸을 만들고 있는 자치단체장을 포함하면 무려 7명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그리고 김관용 경북도지사다.

행정능력과 정치철학을 겸비한 유능한 지방관리 ‘변사또’가 동시다발적으로 중앙을 겨냥하고 나섰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흐름이 거대하다. 하나의 현상이고 사건이라 해도 될 법하다. 이들은 중앙이 하지 못하는 일을 지방에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표면적으로도 최순실에게 농락당한 무능하고 부패한, 정의롭지 못한 중앙을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고쳐 보겠다고 나서고 있다. 도올의 통찰과 달리 지방이 오히려 중앙에 개입하는 형국이다. 30년 가까이 쌓여온 지방자치의 힘이 마침내 표출되는 것일까. ‘춘향전의 나라’에서는 상상으로나 가능했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선은 설령 어렵더라도 그 다음 대통령부터는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서 배출되는 전통(MB에게서 보듯 서울시장은 이 범주에 넣기가 애매하다)이 세워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요즘이다. 이들은 지방 리더십이 국가 리더십으로 진화할 때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중앙에 길들여진 정치인에게 더 이상 대한민국을 맡길 수 없다는 게 시대정신이라고 웅변하고 있다. 사실 새로운 정치란 없다. 다만 새로운 정치인이 있을 뿐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인은 지방을 이해하는 정치인이다. 지방을 모르고 국가정책을 펴나갈 수는 없는 시대가 됐다.

2017년, 국가적으로 탄핵과 대선이라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다. 대구경북 역시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가운데 경북도민의 시선은 내년 지방선거로도 향해야 할 운명이다. 12년 만에 도지사가 바뀌기 때문이다. 전례에 비춰 3선까지 연임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 한 번의 선택이 향후 12년 경북의 운명을 좌우할지 모른다. 다음 경북시대를 이끌 우리의 새로운 ‘변사또’ 찾기가 시작돼야 할 때이다. 변종현 경북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