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치적 예의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2-07   |  발행일 2017-02-07 제29면   |  수정 2017-02-07
[기고] 정치적 예의
장태수 대구 서구의회 의원

대구 서구의원으로 활동한 지 벌써 11년째다. 지방의원을 10년 넘게 하면서 해가 바뀔 때마다 거르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전년도 의정활동을 보고서로 제작해 주민들께 드리는 일이다. 10번의 새해를 맞으며 내놓은 의정활동 보고서가 모두 10편이니 1년에 한 번씩 펴낸 셈이다.

매년 빠짐없이 의정활동 보고서를 만드는 이유는 하나다. 주민들에게 위임받은 권한을 가진 지방의원이 지난 1년 동안 뭘 했는지 월급을 주는 주민들께 말씀 드리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의 실적을 압축적으로 담은 인쇄물을 통해서만 의정 보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상적으로 의정활동을 공유할 수 있고, 주민들과 함께하는 각종 회의나 모임에서 의정활동에 대해 알릴 수도 있다.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주민들에게, 자영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을 찾아가면서 활동내용을 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주민들은 제한적이다. 생각해보라. 지방의원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또 지역구의 각종 회의나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이분들은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지방의원들의 활동을 알 수 있다.

결국 지방의원들의 활동을 주민들에게 널리 말씀 드리고, 특히 정보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있는 분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려 드리기 위해서는 적정 수량의 의정활동 보고서를 제작해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 국회의원들이 매년 의정활동 보고서를 중요한 홍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의정활동 보고서는 지방의원들의 활동을 주민들께 알리는 역할도 하지만, 지방의원 스스로 과거를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계기가 돼 앞으로의 활동을 구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정활동을 보고서로 작성하다 보면 자신이 진행한 의정활동의 장단점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선거 당시 주민들께 약속했던 공약도 곱씹어보며 말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아쉽게도 4년 임기 동안 해마다 꼬박꼬박 의정활동 보고서를 내는 지방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지방의원들의 의정활동 보고서를 접하기 쉽지 않은 배경에는 경제적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 국회의원들은 의정활동 보고서를 펴내는데 예산 지원과 우편 요금 감면 혜택을 받지만, 지방의원들에겐 제도적 지원이 미치지 않는다. 의정활동 보고서 제작·배포 경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심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지역구 국회의원에 종속된 지방정치의 현실도 녹아 있다. 특정정당의 공천이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치 환경에서 의정활동을 주민들과 공유하는 노력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그 노력, 시간, 돈을 공천 받는데 투자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 주민들과 의정활동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주민들과 의정활동을 공유하는 방식이 인쇄물로 만들어내는 의정활동 보고서라고 제한할 수 없다. 그러나 지방의회의 역할과 기능을 잘 알지 못하는 가운데 생겨난 주민들의 불신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주민들의 참여와 자치의 정신을 존중하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건 지방의원의 역할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월급을 주는 주민들께 우리가 가져야 할 정치적 예의가 아닌지, 지방의원들께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