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생각이 많으면 악기를 못 배운다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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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06 07:42  |  수정 2017-02-06 07:42  |  발행일 2017-02-06 제17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생각이 많으면 악기를 못 배운다

지난주 향기박사가 존경하는 석좌교수님 한 분께서 처음 색소폰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칠순이 넘은 교수님이 여전히 왕성하게 학술활동을 하는 모습만으로도 존경스러웠는데, 새로 악기까지 배운다고 하니 교수님의 멈추지 않는 탐구열에 다시 한 번 놀라고 또 더 존경스러웠습니다.

사실 향기박사도 얼마 전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인 ‘드럼’을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상상 속의 모습은 학창 시절 우상이었던 밴드 ‘Kiss’의 드러머 ‘피터 크리스’가 혀를 쭈욱 내밀고 ‘I was made for loving you’를 부르는 멋진 모습이었는데, 정작 현실 속의 제 모습은 스틱을 계속 떨어뜨리고 엇박자로 음악을 망치면서 지쳐서 혀를 쭈욱 내밀고 있는 전형적인 ‘박자치’ 모습입니다. 나이가 들어 새로 악기를 배우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요? 가만 보면 아이들은 새로 악기를 배울때 어른들에 비해 참 쉽게 빠르게 배우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뇌가 어른들의 뇌보다 뛰어나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최근 뇌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그와 반대의 결론입니다. 새로 악기를 배우는 동안 뇌 속에서는 많은 활동이 일어납니다.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기까지의 학습과정 동안 뇌 속에서는 두 가지 업무 처리 과정이 일어납니다. 이 두 가지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은 자동적 처리 과정(automatic processing)과 의식적 처리 과정(conscious processing)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뇌에서 자동적 처리를 하는 일은 자주 반복해서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쉽게 하는 일입니다. 반면 의식적 처리를 하는 일은 뇌의 인지 활동을 필요로 하여 주의를 집중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특별한 경우 이 두 과정이 뇌 속에서 충돌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예는 스트루프 효과(Stroop effect)입니다. 이 효과를 최초 보고한 존 스트루프 박사의 이름을 딴 것으로, 빨간색으로 쓰인 ‘빨강’을 읽고 말할 때보다 노란색으로 쓰인 ‘빨강’을 읽고 말할 때 시간이 더 걸리거나 잘못 말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스트루프 효과란 어떤 주어진 과제에 대한 반응 시간이 주의에 따라 달라지는 효과입니다. 우리는 평소 단어 읽기를 반복하므로 빨간색의 ‘빨강’이란 단어를 말하는 것은 뇌가 자동적으로 처리하는데(단어를 읽는 작업), 갑자기 노란색으로 보이는 ‘빨강’이란 단어를 ‘빨강’이라 말하려면 주의력이 필요한 의식적 처리 과정(단어의 색상을 말하는 작업)을 거치므로 좀 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기를 새로 배울 때도 자동적 처리 과정과 의식적 처리 과정 간의 갈등을 경험합니다. 뇌가 자연스럽게 처리하게 되는 자동적 처리 과정이 주도를 해야 악기를 배우는 데 시간과 노력이 절약될 텐데, 어른의 뇌는 악기를 배우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뭔가 계획을 세우고 행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이런저런 복잡한 의식적 처리 과정으로 바빠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뇌에서 이러한 의식적 처리를 담당하는 곳은 바로 대뇌전두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인데, 이 부분은 우리 뇌의 발달과정에서 가장 늦게 완성되는 곳입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아이들이 새로 악기를 배울 때 시간이 덜 걸리는 모양입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샌타 바버라)의 스코트 그라톤 교수에 의하면 악기 배우는 일 외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생각이 많으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그라톤 교수 연구팀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뇌 속 대뇌전두피질의 활성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시간이 훨씬 덜 걸린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즉 어떤 일을 할 때 너무 생각이 많으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의 뇌까지 활성화시켜 일은 일대로 진행이 잘 안 되고 시간만 더 걸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선현의 말씀처럼 가장 단순한 것이 참 진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향기박사도 오늘부터 생각을 비우고 아이의 마음으로 아니 아이의 뇌로 돌아가 드럼 앞에 앉아 봐야겠습니다. 그럼 조만간 ‘피터 크리스’처럼 드럼을 치게 될까요, 아님 또 이런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더 오랫동안 ‘드럼 박자치’로 남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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