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持斧上疏(지부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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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31   |  발행일 2017-01-31 제31면   |  수정 2017-01-31
[CEO 칼럼]  持斧上疏(지부상소)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는 첫걸음이 된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던 1876년 1월. 살을 에는 추위 속에 면암 최익현은 품에는 상소문을, 어깨에는 도끼를 메고 대궐문 앞에 엎드렸다. 내 상소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차라리 이 도끼로 나를 죽여 달라는 뜻이다. 상소문은 ‘지금 강화도조약이 맺어지면 우리는 힘이 약하고 저들은 강하니 왜는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들을 끊임없이 요구해 올 것입니다. 이에 일방적으로 밀리다보면 조선은 머지않아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결코 왜와 수교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보다 몇 해 전에도 면암은 흥선대원군의 위세에 눌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중에도 대원군의 권력농단을 지적하며 그의 하야를 촉구했던 사람이다. 화가 난 대원군이 벼슬을 강등시켰지만 그는 아예 사직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신념과 품위를 지켰다.

조선은 가난한 나라였다. 겉으로는 민본을 내세웠으나 폐쇄적인 성리학 사상에 갇혀 백성들의 삶은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백년을 이어온 것은 상소문에서 나타난 직언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회를 이끌어가던 선비들의 기개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왕조국가는 정권의 수명이 임금의 수명과 함께 가던 시기이다. 5년 단임정권이 아니다. 평생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겠다는 각오가 없이는 어린 임금에게 맞서 소신을 펴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선비들은 그 길이 바른 길이라는 판단이 서면 뒤돌아보지 않고 그 길을 택했다.

오늘날에도 정치지도자나 관료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기둥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입에 올리고 때로는 그래야만 출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소신과 영혼이 있는 공직자는 자칫 한직으로 쫓겨나거나 명예퇴직을 강요받는 경우를 본다. 세상에서의 출세는 마치 대감댁에 시집온 며느리처럼 보아도 못 본 척하고 싫어도 참으면서 순응하는 자의 몫이 된다. 두 눈 꼭 감고 몇 해만 견디면 새로운 정권에서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오늘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우리 모두가 공범인지도 모른다. 일상생활 속에서 힘과 경제력에 눌려 바른 소리를 목구멍으로 삼킨 경험을 모두가 갖고 있지 않은가. 물론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일반인에게까지 최익현의 기개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주문일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보듯 유대인 학살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조차 태어날 때부터 흉악범의 DNA를 타고난 사람이 아니요, 우리와 성정이 같은 보통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선비의 삶이 백성들의 그것과는 다르고 서로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수준이 달랐듯이 지금도 사회지도자의 책무와 처신은 보통 국민들과는 달라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는 비록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내가 못하는 그 무엇을 몸을 던져 실천하는 사람을 존경할 줄은 안다.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 저항할 수 있는 도덕적 용기와 실천이 없다면 남을 지도하는 자리에 서면 안된다. 그러나 현실은 권력의 핵심에 있는 자들일수록 범죄 행위에 눈을 감거나 오히려 호가호위하면서 그 기회를 이용하여 자기 잇속을 챙기는 데 더 열심이다. 그러다가도 막상 일이 터지면 나는 몰랐노라, 나는 책임이 없노라고 꽁무니를 빼는 모습에 국민들은 더 분통이 터지는 것이다.

경제를 살려 일자리를 만드는 일, 법질서를 회복시키는 일,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나 ‘옳음’에 몸을 던지는 정신이 그 바탕에 있어야만 이 모든 것들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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