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구례길 예연서원 곽재우장군 자전거길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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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7   |  발행일 2017-01-27 제38면   |  수정 2017-01-27
눈 쌓인 길모퉁이엔 자식 치료하러 걷고 걷던 어머니의 종종걸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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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연지 아래 비슬산 보국사 기세곡천길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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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면 본말리에 있는 달창지라고도 불리는 달창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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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 테크노대로를 거쳐 예연서원으로 가는 가태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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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같았던 눈 내린 비슬산둘레길 김흥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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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연서원 입구에 있는 충익공 곽재우, 충렬공 곽준 장군의 신도비각과 곽재우 느티나무.

선조실록에‘현풍사람’기록된 의병장
‘붉은 악마의 원조’ 홍의장군 곽재우
예연서원에 배향된 그를 찾아 달성行

‘미지의 코스’ 유가면 가태리 구례길
엉망인 길 안내표지판 탓에 돌고돌아
갓길 10㎝ 여유 없는 구간 등 생고생


화랑교를 중심으로 동구 효목동과 수성구 만촌동에 걸쳐 ‘근심을 잊고 살겠다’는 뜻의 망우(忘憂)공원이 있다. 망우는 붉은 악마의 원조인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장 곽재우 선생의 호다. 경남 의령 출생인 홍의장군 곽재우를 기념하는 망우공원이 대구에 있는 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분이 많을 것 같다. 책에서나 포털 백과사전에서 구하지 못한 답은 내 주변의 지인들이 가르쳐 줬다. 공의 후손인 현풍곽씨(포산곽씨)들이 선조를 기념하기 위해 살던 세거지를 희사해 조성된 공원이란 것이었다.

그날 이후 망우공원은 내 조상들이 내놓은 달성공원과 함께 대구 기부문화의 랜드마크로 입력되었다. 잘 난 후손들 덕분에 더욱 빛나는 조상이 여기에 있도다. 망우(忘憂)!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지방분권에서 지역주권을 향해 나아가는 자치의 시대에 더욱 빛나는 이름이다. 지방자치를 실시하고도 자주적 지역사를 갖지 못해 문중에서 기념될 뿐, 지역인들에 의해 대중적으로 각인되지 못하고 지방 인물로 멀어진 지역주권적 역사인물 곽재우 장군을 찾아 무동력 두 바퀴 포토바이킹이 달려간다.

도동서원의 김굉필로 달성을 유향(儒鄕)이라 말하기엔 주저됐는데, 홍의장군을 껴입은 달성은 문치를 극복한 문무겸장 500년 역사의 고장으로 환생한다. 당장 그를 배향한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구례길에 있는 예연서원을 찾아가는 길을 개척하랏! 대구시는 예연서원으로 향하는 마음을 전후좌우는 아니더라도, 앞뒤 방향에서 쉽게쉽게 찾아갈 수 있는 정도의 성의를 담은 안내 표지판을 정성껏 세워주었으면 한다. 예연서원 길 안내는 ‘개판’이었다.

선조실록에 곽재우 선생은 현풍 사람이다. 출생지인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는 외가다. 조선시대엔 율곡 이이, 서애 류성룡의 경우처럼 외가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경우가 흔했다. 그를 나쁘게 기록한 선조실록에 곽재우는 “인품이 순박 강개하고 큰 뜻을 품었다. 왜란이 일어난 초기에 일개 서생(書生)으로 분연히 의병을 일으켰고 재산을 모두 털어서 의병들을 먹였다. (중략) 적을 만났을 때는 반드시 홍의(紅衣)를 입고 곧장 진격하였으므로 적은 그를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라고 불렀다”고 쓰고 있다. 조정의 모함에 두 손 들고 벼슬을 버리고 떠나갈 때는 신 한 켤레에 말 한 필뿐이었으니 듣는 자들이 모두 찬탄하였다고 한다. 뒷담화 많고 투서 1등 하는 도시의 양상과 달랐던 경상도와 더불어 살았나 보다.

의병장 곽재우를 어떻게 이해하는 게 시의적절할까. 곽재우는 과거에 급제하고도 얼 바른 글을 지었다는 이유로 낙방한 국가 인재였다. 기득권 쫑파티로 국란을 초래한 수도권 인사들이 썩어 문드러져 나라가 휘청거릴 때 지방이 있어 국난이 수습될 수 있었다. 부산 동래에서 시작되어 대구에서 불을 댕긴 국채보상운동도 상대적으로 고결했던 지방인재들의 물질적 토대가 뒷받침된 정신적 승리로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

많은 것들은, 아니 모든 것을 서울 사는 인간들이 장악하고 있다. 셔블(서울의 옛말)에 의한 지배의 역사는 신라 박석김 왕조가 무너진 이래 정권이 여러 번 교체되어도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지방분권을 강조하는 정권을 창출하고도 바꾸지 못한 현재진행형의 역사적 비극이다. 중앙이 상류이고 지방이 하류로 전제되던 시대에 지방이 상류였던 때는 국가 위기 때였다. 지역사교과서를 제작해야 할 시점에 국정교과서 집필 타령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면 국가변고의 징조다. 다문화시대의 역사교육을 국정교과서로 획일화하려는 무리수는 단절되어야 할 반문명적 쿠데타 음모다. 통일대박, 문화융성은커녕 탄핵소추를 당하는 국가적 수모를 겪는다. 언제까지 나라가 흔들릴 때 지방이 행복한 나라에 살아야 하나.

예연서원(禮淵書院)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엔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 구례에 있는 서원이고, 두산백과엔 곽재우와 곽준의 위패를 봉안한 조선시대 서원으로 나와 있다.

토요일 밤 눈이 내렸다. 정유년 서설(瑞雪)이었다. 2015년 봄에 달렸던 김흥임도를 타고 유가사 주차장을 거쳐 미지의 가태리로 가는 코스를 그렸다. 길을 나서려니 막막했다. 가보지 않은 길은 백지 상태. 많은 돌발 경험을 안겨준다. 낯선 길이 주는 변수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가고 싶은 길을 찾아 길 없는 막다른 길에서 헤매보지 않고 자전거는 왜 타나! 졸다가 맞이한 일요일 아침, 나는 눈이 내려 설산고행길이라 부른 김흥임도로 눈부처를 만나러가는 마음으로 행했다. 임도 산악MTB길로 로드바이크 타는 김형이 따라 나섰다. 자전거 타는 고생은 사서도 할 만한 무모한 도전 아닌가!

북구청 건너 먹자골목 동태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지하철 대구역으로 하여 박근혜역으로 기억될지 모를 연장된 1호선 지하철 종점 설화명곡역으로 이동했다. 김흥임도와 ‘설명’역 사이엔 5㎞ 거리의 송해스러워진 옥연지가 있다. 설화리에 있는 모개골길 이름에 홀려 굽은 길로 들어갔다. 막힌 길을 돌고돌아 나와 중앙수퍼 앞에서 늙지 않는 보호수를 만났다.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못 생긴 노거수 몇 그루들이란 걸 오래 머물 수 없는 골목길에서 보고 간다.

중앙수퍼, 진미식당 골목을 빠져 나오니 비슬로 인도를 따라 차량 방향과 역주행해 간경교차로 네거리에 도착했다. 달성군노인복지관 쪽 기세리 방향 옥포로로 달리다 말고 기세곡천변 벚꽃나들길로 들어갔다. 웬만해서는 얼지 않는 계곡이 얼어붙어 있는 게 비정상으로 보였다. 길지 않은 벚꽃나무 군락길이 끝나는 지점에 성재 채상기(成齋 蔡庠基)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30대 중반에 이곳에 정착하여 옥포양조장을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일본에서 사재로 묘목을 수입하여 용연사가는 길에 심어 용연사 벚꽃길을 열었다는 미담이 새겨진 기념비였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더니, 올 봄엔 기세곡천 옥포 밤바다의 ‘벚꽃엔딩’을 듣고 싶다. 이 또한 대구를 빛내는 인천 채씨들의 공덕이 아닌가 싶다.

옥포로를 따라 옥연지로 가는 멀지 않은 길은 좁고 위험했다. 옥연지 못둑 옆으로 이색 얼음폭포가 압도했다. 주차장 부지 안 극락교를 건너 이끌려 보국사 경내로 들어갔다. 수돗물로 만드는 인공빙벽이란 걸 감추지 않는 게 디테일의 실패였지 불순한 발상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잘 만든 인공은 천지창조보다 낫기도 한다.

보국사를 나와 옥연지로 오르는 길엔 갓길 10㎝ 여유도 없는 구간도 나왔다. 차량들은 이 구간에서만은 과속 기세를 버리고 조심조심 자비심을 발휘한다. 그 마음 자라는 거기가 연꽃 피우는 용연사다. 옥연지 물위를 걷는 것처럼 데크길로 수상 라이딩을 즐겼다. 잠시 머물렀다 사진 찍고 가는 대구관광 송해공원 옥연지에 망우공원의 홍의장군 기마상 같은 명작이 없는 건 자치역량이 뒷받침되지 않는 시대유감이다.

반송2교가 있는 반송삼거리에서 김흥임도로 가는 옥포로111길의 중화요리 봉천각까지는 1㎞. 그런데 반송3교를 건너는 착오로 반송임도 방향으로 겉돌았다. ‘비슬’자만 들어가도 비슬농장으로 보이는 것인지? 망설임 없이 비슬농장으로 가는 내비게이션을 켜니 기억된 미륵사, O2글램핑을 차례로 지나는 김흥임도로 데려다 주었다.

겨울철이어서 김흥임도가 시작되는 산불감시초소엔 귀마개를 한 근무자가 있었다. 검문검색은 받지 않았다. 눈쌓인 설산을 기대하며 나섰는데 눈은 녹아 없어지고 일부 구간에 잔설로 남아 있었다. 완만한 상승일로의 김흥임도에서 로드바이커는 자전거 구실을 못했다. 오르막이 끝나는 초곡산성 표지 쉼터까지 끌바로 쉼없이 등반라이딩을 했다. 눈 내리고 녹아 봄길 같았던 김흥임도 길은 1시간여 만에 주파됐다.

눈 쌓인 이 길 어딘가에서 눈부처 그니를 만나고 싶다는 기대는 내 마음 골짜기에서 이루어졌다.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정호승, ‘눈부처’)

꼬부라져 돌아가는 길모퉁이로 귓병 걸린 동생을 치료하러 걷고 걸어가던 어머니의 종종걸음이 묻어났다. 때마침 귓가를 파고들며 마음을 후벼파는 슬기둥의 노래 ‘여인’이여!

유가사 주차장까지 내리막길은 자전거 바퀴가 자동차보다 숨가쁘게 굴렀다. 아름다움이 크다는 이름을 가진 참나리 자생지 가태마을로 빨리 가보고 싶어서다. 햇빛이 내리 비치는 양리 건너 음리의 동쪽 음동길을 타고 줄달음을 쳤다. 페달질의 의미가 없는 속도가 났다. 가만 있으면 춥다. 안장 위에서 가벼운 댄싱이라도 해야 한기를 덜 느낀다. 용봉천교삼거리, 테크노순환로의 휴양림입구 네거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대경지역본부, 용금공단네거리를 지나 옥녀봉네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테크노중앙대로를 갈아 타고 유곡네거리를 파고 들어 유곡1교를 건넜다.

유곡 떡방앗간을 보고 좌회전, 태영테크, 하나비철, 패밀리쿡 공장 앞에 도착, 가태길 내비게이션을 켜서 인도를 받으면 사배지, 일용목장, 감통지, 달창지가 나오는 유가면 가태리의 예연서원에 안착할 수 있다.

정유년 의병의 날에는 초행길이라 못 가본 달성군 구지면 대암리의 홍의장군 묘소와 현풍곽씨 세거지인 현풍면 대리의 솔례(率禮)마을을 모함하는 곽재우장군 자전거길을 열어보리라. 곽재우장군은 자치분권의 한계를 넘어 지역주권을 열어줄 역사적 인물로 환생하고 있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설화명곡역-간경교차로 네거리-기세리 옥연지-김흥임도-유가사 주차장-휴양림입구네거리-옥녀봉네거리-유곡네거리- 못안길-가태길-달창지-구례길-예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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