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政談

  • 조정래
  • |
  • 입력 2017-01-27   |  발행일 2017-01-27 제23면   |  수정 2017-01-27
[조정래 칼럼] 政談

새해를 맞았지만 영 새해 같지가 않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어수선함이 마음자리를 흔들어놓는 와중에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더 팍팍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가는 치솟고 설이 내일로 다가왔지만 귀향을 못 하는 고단한 사람들도 예년보다 더 많을 터이다. 정과 온기를 나누며 삶의 신산함도 잠시잠깐 잊는 설 연휴가 되기엔 너무나 미흡한 세태다. 설 민심이 이렇게 팍팍하고 화젯거리 또한 음울하고 음습한 정담(政談) 일색이기 십상이다.

설 연휴 논쟁의 도마에 오를 거리는 어느 해, 어느 명절 때보다 풍성하다. 탄핵 찬반, 최순실 게이트,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김영란법 등 이야깃거리가 차고도 넘친다. 하나같이 폭발력과 인화성이 높아 자칫 제어되지 않으면 가족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으니, 취급주의 품목이기도 하다. 정치 이야기가 명절, 특히 설 연휴의 금기가 된 지 오래다. 그만큼 한국의 정치가 역동적이고 다양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개 머리에 똥을 얹은 그림이 국회의원회관에 전시되고 있는 작금, 그 하찮은 정치 때문에 멀쩡한 부자 사이가 금이 가고, 삼촌과 조카가 얼굴을 붉혀서야 되겠는가.

공무원 동생을 극우라며 몰아붙였던 나부터 젊은이들로부터 비판받는 ‘꼰대’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다는 반성을 하면서 이번 설에는 정담을 나누되 리드미컬한 대화를 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 ‘가족 간에 정치 얘기 하지 말라’는 충고가 어느 해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면 그 또한 용기와 지혜 없음의 징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대 간 갈등과 세대 차이는 자연스럽다.

대화의 기술이 문제 아닐까. 화기애애해야 할 설날 한때가 냉기를 덮어써야 되겠는가. 부러우면 진다고 했는데, 먼저 화를 내도 지는 거다.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끼리도 견해차로 다툼이 심심찮은데, 하물며 오랜만에 만난 친지 간에 입장 차가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서로 다름을 인정·전제하고 들어가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한꺼번에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서두르지 말라. 내 입장을 주입하고 설득하려는 어투와 어법은 대화의 최대 적이다. 동일시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하고 되도록이면 반박에 앞서 경청하는 태도를 보여라.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듯, 대화에도 기술이 중요하다. 성급하고 조바심을 낼수록 이야기는 겉돌기 마련이다. 내가 나에게 하는 조언이다.

전환기, 격동기 대한민국의 정치적 세대·견해차는 나이와 계층을 뛰어넘는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의 구분은 적확하지 않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워낙 다기해졌고, 그 개념도 모호하다. 개인의 정치적·이념적 궤적이 물리적 나이를 더함에 따라 진보에서 보수로 위치 이동을 하거나 좌우를 넘나들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의 정치현실이 역동적이고 가변적이다. 정치적 견해차가 불변의 소신은 아니고, 그렇게 핏대를 올리고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지켜야 할 가치는 없다.

정담(政談)은 정담(情談)만 못하다. 택시를 타 보라. 택시기사 이르기를,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나쁜 X들이 국회의원이다. 욕하지 않는 손님들이 없다. 300명 너무 많다. 100명 이하로 줄여야 한다. 얼마나 수준 이하이길래, 국개(?)의원이라고 하겠나. 선량들이 당 대표에게 금배지 반납하고 자숙을 다짐한 바 있지만, 시늉에 가깝다. 이 기회에 제발, 개과천선 좀 해라. 공천권도 국민에게 돌려주고, 주민소환권도 부활시켜라.’ 들리는가, 민초들의 아우성이.

후회는 항상 늦고, 깨달음도 이르지 않다. ‘내려가면서 보았네/ 올라가면서 못 보았던 그 꽃’이라고 시인 고은은 고아하게 노래했다. 불가는 우리 개개인 모두를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본다. 그렇다.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유일한 개인이다. 차이를 넘으면 같음이 보인다. 무식하고 무지하면서 외곬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이가 지도자로 등극하면 나라를 결딴내게 된다. 이념과 진영이 인간에, 그것도 가족에 우선할 수 있겠나. 알면서도 매양 잘못과 후회를 되풀이하니, 그 역시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적 모순의 결과이려니. 경청이 답이다. 정담(政談)이든 정담(情談)이든. 논설실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